미국 대법원 "공공장소 권총 휴대는 헌법적 권리"..총기 참사 빈발 불구 규제 후퇴 불가피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2022. 6. 24. 1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미국 시민들이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연방 대법원이 공공장소 권총 소지를 규제한 뉴욕주의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대해 비판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23일(현지시간)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휴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판결했다. 잇따른 총기 참사에도 불구하고 공공장소 총기 휴대 권리를 확장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미 대법원은 이날 ‘뉴욕주 소총 및 권총 협회 대 브루언’ 재판에서 집 바깥에서 권총 휴대를 제한한 뉴욕주 법률이 시민의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한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1913년 제정된 뉴욕주의 해당 법률은 일반 시민이 자신의 집이 아닌 바깥에서 권총을 휴대할 때는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당국에 ‘정당한 사유’와 ‘선한 품성’을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109년 동안 유지돼온 이 법률은 폐지되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미 대법원은 2008년 개인이 자기 방어를 목적으로 집에서 총기를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다고 인정했는데, 이번 판결은 그 권리를 집 바깥의 공공장소로 확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법관들의 판단은 이념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었다.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은 위헌,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보수 성향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미국 헌법은 개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집 바깥에서 권총을 휴대할 권리를 보장한다”면서 “우리는 개인이 정부 관료들에게 특정한 필요를 증명한 뒤에야 누릴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수정헌법은 총기 소유 권리에 관해 집과 공공장소의 구분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 성향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2020년에만 4만5222명이 총기로 목숨을 일었다면서 이번 판결이 미국 사회의 심각한 총기 폭력을 외면한 채 각 주가 총기 폭력에 대응할 능력을 박탈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의 파장은 뉴욕주를 넘어 캘리포니아, 뉴저지, 매릴랜드, 메사추세츠, 하와이 등 유사한 법률을 시행 중인 최소 5개 주와 수도 워싱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AP통신은 이번 판결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미국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대법원의 오늘 판결에 매우 실망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판결은 상식과 헌법에 모두 배치되며, 우리 모두를 큰 곤경에 빠트릴 것”이라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총기 규제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각 주 단위에서도 시민들을 총기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시행해달라고 촉구했다. 법무부도 대법원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연방 차원의 총기 규제 법률 방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도 “암흑의 날이 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면서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상원은 새로운 총기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새 총기규제법안에 대한 토론을 종결시킨 다음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65 대 반대 33으로 가결 처리했다. 총기 규제에 비판적인 공화당에서 15명의 상원의원이 법안 통과에 협력했다. 21세 미만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 조회 강화, 전과나 정신병력 등이 있는 이들에 대한 총기 소유를 제한하는 ‘적기법’을 채택하는 주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 법안이 21일 하원까지 통과하면 1994년 이후 28년만에 처음으로 연방 의회가 유의미한 총기 규제 법안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대법원이 헌법이 보장한 총기 소유 권리를 확대 해석함에 따라 기존에 시행 중이거나 앞으로 추진될 각종 총기 규제 법률들이 대법원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