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보다 과학 논문 저자로 인정 덜 받고 있다
영국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생명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X선 사진을 최초로 찍은 사람으로 꼽힌다. 그러나 195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DNA의 구조를 밝힌 최초의 논문에는 프랭클린이 찍은 사진을 보고 DNA의 구조를 처음 예측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이름만 있다. 정작 20세기 생명과학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자인 인물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이다.
과학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다크 레이디’는 지금도 있다. 줄리아 레인 미국 뉴욕대 공공서비스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같은 양의 일을 해도 논문 저자나 특허 발명가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2일 발표했다.
과학계에는 지금도 남녀 격차가 엄연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 과학자들이 남성보다 훨씬 적은 것은 물론이고 여성 과학자 한 명이 내는 평균 논문수도 남성 과학자들보다 적다. 하지만 남성 과학자들은 여성 과학자들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고 과학 연구기관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사례도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여성 과학자 지위가 뒤늦게 올라간 이유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과학자 사회에서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실제 연구에서 여성 과학자의 기여도가 얼마나 반영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52개 대학 9778개 연구팀 12만8859명이 발표한 논문 3만9426편과 특허 7675건의 저자와 발명가를 분석했다. 논문과 특허 출원 과정에서 참여한 연구자 가운데 여성 연구자들은 48.25%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논문 저자로 올린 경우는 34.85%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남성과 동등하게 연구와 특허 개발에 참여했지만 학술적 기여도를 덜 인정받은 것이다.
남성이 연구 기간 전체에서 논문 저자나 발명가로 이름을 올릴 확률은 21%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은 12%에 머무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직책에 있더라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5% 더 낮았다. 논문 게재일을 기준으로 1년 내 연구팀에 합류한 남성과 여성을 비교했을 때도 남성이 이름을 올릴 확률이 2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과학자들도 과학자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이후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 2660명에게 자신이 기여한 논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례를 물어본 결과 남성 연구자 38%가 '그런 일이 있다'고 답한 데 비해 여성은 그보다 많은 43%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신의 기여가 과소평가된 일이 있다고 답한 경우도 남성은 39%, 여성은 49%로 차이가 났다. 레인 교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논문과 특허를 내는 비율이 낮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제기됐지만 정확한 데이터가 지금까지 없었다"며 “기여도에 대한 격차가 과학 분야의 여성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젊은 여성들이 과학을 직업으로 추구하는 것을 막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과학자 사회에서 여성 연구자에 대한 평가에 무의식적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테판 크라우스 영국 버밍엄대 지리학부 교수팀은 전 세계에서 수여되는 각종 과학상 345종 수상자 8959명의 성별을 분석한 결과 남성의 이름을 딴 상이 214개인데 이들 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은 12%에 머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은 사람 이름을 따지 않은 상의 경우 수상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4%로 올라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남성과 여성 이름 모두를 딴 상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32%로 높아졌고, 여성의 이름을 딴 26개 상에서는 47%로 나타났다.이 분석 결과는 지난달 25일 유럽 지구과학연합 총회에서 공개됐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