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폭력의 늪에 빠진 '블랙파워'의 고장..아시아계 교사와 흑인 아이들의 '연대와 성장'

이영경 기자 2022. 6. 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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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과 함께 읽기
미셸 쿠오 지음·이지원 옮김|후마니타스|432쪽|2만2000원
<패트릭과 함께 읽기>의 저자 미셸 쿠오(오른쪽)가 그의 제자 패트릭과 함께 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소외된 아칸소주 헬레나에 사는 패트릭은 미셸 쿠오를 만나 문학적 재능을 깨닫게 되지만 저자가 떠난 후 친구를 살해해 수감된다. ⓒCathy Huang

이 책을 읽는 동안 ‘갱스터 물리학자’ 하킴 올루세이의 자전적 에세이 <퀀텀 라이프>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올루세이는 빈민가에서 가난·폭력·마약으로 점철된 환경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됐다. ‘가난한 흑인’인 그는 빈곤과 폭력이라는 사회적 조건을 딛고 기회를 얻어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궁금했던 것은 그의 고향이었다. 그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네 살 때 그곳을 벗어나 각 도시의 빈민가를 전전했다. 그는 ‘이동’을 했다.

올루세이의 고향이 궁금했던 이유는 <패트릭과 함께 읽기>의 패트릭이 뛰어난 문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스무살에 살인범이 된 것과, 올루세이가 험난한 환경을 뚫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희망, 기회라는 말이 자취를 감춘 곳. <패트릭과 함께 읽기>에 등장하는 미국 아칸소주의 미시시피 델타(델타)에 있는 도시 헬레나는 그런 곳이다. 부모님 세대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 곳. 아이들이 “내가 열여덟 살까지 살 수 있을까”를 궁금해하는 곳.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델타를 벗어난 적이 없고, ‘이동’할 기회조차 없었다.

저자 미셸 쿠오는 대만 출신 이민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민 2세대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엘리트 쿠오는 자신이 품은 진보적 이상을 좇아 스물두 살에 미국에서 가장 소외된 곳 중 하나인 델타로 간다.

아칸소주는 미국 흑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비옥하고 드넓은 땅에서 면화가 재배됐고, 백인 지주들에게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은 필수적이었다. ‘노예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노예 해방 이후에도 흑인에 대한 학살과 린치가 빈발하던 지역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흑인 민권운동의 주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면화와 극빈의 땅이었던 이 지역은 초기 민권운동과 블랙파워 운동의 주 무대”였다. ‘블랙파워’란 말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마틴 루서 킹도 이곳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다 암살됐다.

대만 이민2세대 쿠오, 미국 아칸소 흑인 소년 패트릭의 문학적 재능 발견
3년 뒤, 살인범으로 전락한 패트릭과 함께 다시 문학 수업을 재개
희망·기회가 감춘 곳, 진정 필요한 건 ‘성장과 가능성의 이야기’

그런 역사를 비웃듯, 현재의 델타는 그저 가난하고 버려진 ‘별 볼 일 없는’ 도시가 됐다. 쿠오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이곳에서 대안학교인 ‘스타’ 학교에 교사로 지원한다. 그곳은 무단결석 퇴학생, 마약중독자, 싸움꾼 등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서 퇴출당한 아이들이 공교육에서 배제되기 전 마지막으로 ‘체제 잔류’를 시도해보는 곳이다. 쿠오는 아이들이 마틴 루서 킹, 맬컴 X, 제임스 볼드윈 등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이들의 글을 읽으며 자신들의 역사와 자부심을 일깨우길 바랐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이었다.

현실은 글조차 못 읽고,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무기력과 폭력만을 학습한 아이들. 그들은 쿠오를 ‘중국년’ ‘칭총’이라며 놀려댈 뿐이다. 그들에게 ‘블랙 파워’는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곳엔 인종차별이란 말조차 낯설다. 거의 흑인들만 살기 때문이다. 북부로 이주조차 못하고 자포자기한 흑인들의 자손들이 이곳에 남아 이전 세대의 삶을 답습한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카운티” “십대 출산율은 94개 개발도상국보다도 높은” 헬레나에 대해 쿠오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델타는 우리가 미국에 품고 있는 신화를 일부 무너뜨린다. 민권운동의 탄생지인 이곳이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인종적으로 분리돼 있고, 여전히 극적인 사회변화가 필요하다면, 대체 민권운동은 다 무엇을 위해서였단 말인가?”

하지만 쿠오는 포기하지 않고 이들에게 다가간다. ‘우쭐거리는 태도’로 그들의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마음을 접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다가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단어로 쓰인 책들을 찾아 읽히고, 그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단연 눈에 띄는 학생은 패트릭이었다. 패트릭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었고, 그의 재능은 쿠오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다. 그가 처음으로 쓴 시는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시’여서, 읽는 독자에게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여기까지는 한 교육자의 헌신에 관한 완벽한 미담이다.

<패트릭과 함께 읽기>를 펴낸 미셸 쿠오. ⓒJasmine Cowen

하지만 쿠오는 부모님의 기대와 압박에 델타를 떠나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고, 변호사 시험을 치른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앞두던 시기, 그는 패트릭이 살인범으로 기소돼 수감돼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패트릭을 만나기 위해 3년 만에 헬레나를 다시 찾은 쿠오는 구치소에서 패트릭을 만나고 깜짝 놀란다. 그가 알던 패트릭은 사라졌다. 글을 읽지도 못하고, 과거의 기억은 거의 잊었다. 패트릭은 체제 밖으로 완전히 떠밀려버렸다. 싸움에 휘말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뒤였다.

쿠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법률가의 삶을 미루고, 델타에 머물며 패트릭과 함께 다시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읽기조차 제대로 못하던 패트릭은 쿠오가 건넨 ‘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으며 책 속으로, 문학 속으로 빠져든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살해한 마커스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인상적인 부분은, 쿠오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겪은 배제와 차별이 흑인들이 겪은 차별과 교차되고 겹치는 부분이다. 대만에서 이주한 쿠오의 부모는 쿠오가 ‘완벽한 미국인’이 되길 바라며 그들 자신의 언어나 역사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쿠오에게는 미국 사회의 일부가 된 과정을 증명할 ‘이야기’가 없었다. 쿠오는 “나는 일종의 대체재로 흑인 전통에 기대었고, 그럼으로써 내 역사의 부재를 채우고 미국의 과거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의 학생 중 하나가 쿠오에게 ‘야오밍의 친척이냐’고 질문하자, 쿠오가 ‘넌 코비 브라이언트의 친척이고?’라고 반문한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우리가 모두 델타의 백인 우월주의 역사라는 동일한 맥락 속에 있다는 뜻이었다.”

책은 감동스럽지만, 희망스러운 결말은 아니다. 패트릭은 ‘일급 살인’에서 ‘치사’로 혐의를 낮추지만, 강력범죄 전과라는 꼬리를 달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쿠오가 델타를 찾은 것이 ‘자신의 이야기’를 흑인 민권운동 역사에서 찾으려 했던 것과 이어져 있다면, 델타의 아이들에게 부재했던 ‘성장과 가능성의 이야기’를 쿠오는 이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것이 진정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패트릭과 함께 읽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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