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우등생 말고 나머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은유의 책 편지]

은유 작가 2022. 6. 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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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아이들
성태숙 지음│민들레│312쪽│1만4000원

이 책은 서문 얘기부터 해야 합니다. 저자는 서문 쓰기가 어려워 한 달째 붙들고 있다가 하도 답답해서 주변에 조언을 구했답니다. 그랬더니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현관 같은 게 서문이라고 하더래요. 그 설명을 들은 저자는 더 당황하며 이렇게 씁니다. “내가 아는 집은 현관이 거의 없다. 문을 열면 그냥 바로 방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비유는 자신이 처한 계급적 문화적 조건을 말해주죠. 저자 성태숙 샘은 공부방 교사예요. 구로동에서 자랐고 구로동에서 파랑새지역아동센터를 십년 넘게 꾸려온 이야기를 글로 썼죠. 자신의 책은 ‘단칸방’이라고, 남에게 별로 보이고 싶지 않은 일상의 비루함이 고스란히 보인다고 소개하죠. 제목이 <변방의 아이들>입니다.

김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전 학교 강연에서 아이들을 주로 만납니다. 아이들은 독서와 토론을 하고 모이는데요. 책을 능숙하게 착즙해낸 발표와 질문을 듣노라면 입이 딱 벌어져요. 어느 학교에선 제가 노동 현안을 말하려고 “SPC그룹 노조”라고 입을 떼자 “임종린이요”라고 받아치는 아이도 있었죠. 누가 요즘 애들더러 생각 없다고 그러지? 이렇게 똑똑하고 예쁜데! 탄성이 절로 나와요. 그런데 강연을 마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오는 길엔 고조된 감정이 또, 그만, 거짓말처럼 가라앉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 커다란 학교에서 제가 만난 아이들은 한 줌의 우등생이라는 것, 두 시간을 꼼짝않고 집중하는 게 가능한 훈련된 몸들이라는 것, 그리고 오늘날 입시 위주의 공교육 체제에선 저 똘똘이들에게 기회와 혜택이 쏠린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아서겠지요. 강연 참가자에게 주는 책과 소시지빵과 탄산수 같은 간식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받지 못하는 것마저 괜시리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스치듯 본 것도 같습니다. 성공회 신부님이 운영하는 작은 서점에서 북콘서트를 마친 밤 10시 즈음이었어요. 근처에서 한무리의 청소년을 만났죠. 저녁시간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본다며 신부님이 말씀하셨어요. “우리 애들이 집에서 혼자 자야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부모가 야간 노동을 하거나 없어서 그렇다고요. 저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아이들의 ‘혼자 남은 밤’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현관이 없는 집처럼요.

김 선생님. 전 한 번씩 제가 본 현실이 범벅이 되어버려서 혼란에 빠집니다. 그래서 강연의 즐거움 끝에 오는 뒤숭숭함을 꺼내놓았을 때 선생님이 공감해주셔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김 선생님도 강연을 나가면 명문고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비슷한 고민이 생긴다고 말하셨죠. ‘그 아이들과의 시간이 소중한 것은 틀림없지만 내가 한정된 시간을 분배한다면, 어디로 갔어야 하는가.’

김 선생님이 던진 물음을 품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학업 성적이 낮은 아이나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아이들을 만날 기회는 왜 안 생기는지.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책이나 강연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오만함은 아닌지…. 저 혼자서 벌이던 상념의 대잔치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준 게 2015년에 나온 이 책입니다. “학교는 어쩌다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변방의 아이들>이요.

“다른 아이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 예의도 좀 차리고 체면도 있고, 적당히 욕심 부리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잘못하면 꾸중 들을 줄도 알고, 용서를 빌고 뉘우치며 다시 노력하고, 되돌아보고 후회도 하며, 잘해보고 싶다 마음도 먹어보는 그 모든 일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짜증날 만큼 어렵게 배워야 하는 일들이다.”

교사인 성태숙 샘으로서는 “울화통이 터져 죽거나 어처구니가 없어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날마다 일어나는데요, 죽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를 극사실주의로 기록합니다. “말은 어른스럽지만 자기보다 훨씬 어린 학년 공부도 힘겨워하는 건, 다른 걸 생각할 일이 많아 공부는 뒷전이었기 때문일 거다.” 이런 담담한 문장은 저를 그 아이의 입장에 머물게 해주었고 동정의 감정은 존중의 감정으로 변했습니다.

맞아요. 성태숙 샘이 독자를 ‘단칸방’으로 초대한 이유는 가난한 아이들의 불행을 전시하려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가난 속에서도 성장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에요. 서문에서도 밝힙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의 성장은 어느 틈엔가 중심을 향한 질주로 바꿔치기 되었다. 그런데 영양이 풍부한 땅에서 햇볕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는 나무들도 있지만 바위 틈에서 자라는 나무도 있다. 그들의 성장을 하나의 잣대로 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사람은 이렇게라도 자라려고 애쓴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어서 쓴 글이라고요.

역시나 책은 자기 물음이 있을 때 읽어야 제대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김 선생님의 질문 덕분에 <변방의 아이들>을 다시 읽었고, 강연장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 “더 험하게 사는 아이들, 더 억울한 아이들, 스스로 삶을 일구어가야 하는 아이들”의 고유한 면면을 책으로나마 만나보았습니다. 독서와 토론을 성장의 척도로 여기던 편협한 생각이 흔들렸으니까 저도 조금은 성장한 거겠죠. ‘어디로 갔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질문이 답을 주진 않아도 시야는 열어준다는 사실이 힘이 됩니다.

은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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