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규칙을 거부하다 발생한 새로운 질서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팝 음악’으로써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로 케이팝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책브리핑은 케이팝의 발전과 음악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음악의 다채로운 장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포스트 록’이라는 분류는 마치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처럼 활용됐다. 그러니까 이는 리듬이라던가 코드 등의 음악적 특징이라기 보다는 어떤 흐름을 설명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과거 포스트 펑크가 그랬듯 이 역시 카운터 컬처처럼 작용해내고 있었는데, 부드럽게 가치관의 전복을 도모하는 한편 록이 가지고 있었던 반골기질이나 저항 같은 특성들은 일부러 배제했다.
포스트 펑크로 분류된 것들 중에 기존 펑크의 문법과는 상관없는 음악들이 많았 듯 포스트 록 또한 기존의 록 음악과는 아예 맥락 자체가 다른 음악들이 마치 한 장르인 것처럼 분류되어 있었다.
포스트 록은 앰비언트, 재즈, 일렉트로니카, 실험 음악부터 덥, 레게,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특색을 아우르고 있었다.
때문에 만일 포스트 록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레이첼스’는 현대음악이나 실내악으로, ‘토어터즈’는 레프트필드 재즈로, ‘라브래드포드’는 노이즈나 앰비언트로, 그리고 ‘칼리폰’은 사이키델릭 포크 정도로 분류됐을 것이다. 사실 이 또한 틀린 분류는 아니다.
모든 인디 록이 그렇듯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시작으로 1970년대의 크라우트 록 등에서 영향받은 포스트 록은 비평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1994년 3월 음악잡지 <모조>에서 버크 사이코시스의 앨범 <Hex>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으로 활용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록의 악기를 록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기타를 리프나 멜로디를 위해서가 아닌, 음색이나 울림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는 음악’을 지칭하는 데에 포스트 록이라는 말을 끌어들였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모조> 이전에 또 다른 음악잡지 <멜로디 메이커> 지에서 먼저 포스트 록이라는 단어를 썼다고도 말했는데 한동안 이 단어 자체를 잊고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는 누구나 사용하는 말이 되어버렸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 음악 매거진 <NME>에서 처음으로 포스트 록이라 언급했던 것은 의외로 포스트 펑크 밴드인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였다.
토크 토크의 <Spirit of Eden> 그리고 슬린트의 <Spiderland> 등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나온 앨범들이 포스트 록의 어떤 토대가 되었다.
이후에는 토어터즈, 그리고 스테레오랩 등의 밴드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조류가 형성된다. 90년대 후반에는 시카고가 포스트 록의 본거지가 됐는데, 토어터즈의 존 맥킨타이어, 그리고 짐 오루크가 여러 중요한 포스트 록 앨범들을 프로듀스해왔다.
시카고와는 별개로 몬트리올에서도 움직임이 시작되는데 캐나다 퀘벡 출신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를 중심으로 ‘실버 마운트 자이온’, ‘두 메이크 세이 씽크’, ‘프라이 팬 암’ 등이 앨범을 발매한다. 이들은 구체음악과 실내악, 그리고 프리 재즈 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처음에 포스트 록을 가르는 기준은 태도라던가 흐름, 혹은 현상에 관한 것이었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굳어진다.
2000년대 초반, 비평가들은 마치 과거 얼터너티브를 비꼬듯 포스트 록이라는 말의 용법과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아티스트나 청취자들 또한 이 용어에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애초에 폭넓은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였기 때문에 자주 혼선을 빚었고 장르를 지칭하는 말로서 사용하기에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모과이’,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등의 밴드가 등장하면서 포스트 록이라는 명칭은 기이한 방식으로 생명을 연장한다.
기존의 정해진 틀에 박힌 음악적 형식을 거부하는 움직임처럼 보였던 포스트 록이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정형화된 음악적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를 테면 긴 러닝타임으로 이루어지고 리버브와 기타 노이즈를 섞은, 연주로만 이루어진 록 음악 정도로 정형화됐는데 이는 모과이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 같은 대형 스타들로 인해 만들어진 틀이었다. 하물며 이제는 이런 식의 정형화 마저도 낡은 분류로 여겨진다.
현재의 경우 프로그래시브 록, 매스 록 등에서 볼 수 있는 변칙적인 박자와 폴리리듬을 삽입한 접근이라던지, 이모나 하드코어, 혹은 메탈과의 퓨전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의 폭넓은 융합을 이뤄내고 있다.
이는 블랙게이즈나 포스트 메탈의 잔가지로 뻗어 나가기도 한다. 대체로 현재는 연주 중심의 가창이 아예 없거나 적은 곡들이 ‘게으르게’ 포스트 록으로 분류되고 있는 추세이다.
포스트 록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당시 이 단어의 쓰임새는 마치 이제 전형적인 록의 시대가 종결됐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되는 듯 싶었다.
이는 앞 세대에 등장했던 얼터너티브처럼 자신 있게 스스로를 ‘대안’이라 칭하고 있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순수했던 초기 로큰롤로 돌아가자는 리바이벌 같은 류의 움직임도 아니었다.
그저 록의 황금시대가 한번 휩쓸고 지나간 이후 지리멸렬하게 해체되고 무정형의 상태로 남겨진 것들을 띄엄띄엄 뭉뚱그려 모아 놓은 상태를 칭하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당시 번뜩이는 실험과 새로운 교배가 성실하게 진행됐지만 얼터너티브처럼 시장을 뒤집어 놓지는 못했고 대부분은 아레나 대신 어두컴컴한 클럽이나 스튜디오로 비집고 들어가버렸다.
음악에 관심 없는 이들이 표면적으로 바라볼 때는 마치 록이 90년대부터 현재까지 30여년의 시간에 걸쳐 아주 느린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잡지 같은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만일 록이라는 것이 죽었다면 포스트 록은 구천을 떠도는 유령일 것이며 아직 죽지 않았다면 의식 없는 환자가 생명 연장을 위해 맞고 있는 포도당 링거에 가까울 것이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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