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중심 못 잡고 검수완박 찬성한 것 후회"
여의도 거대담론에서 나와 노동자·청년 찾아가기 위해 당사 이전
정의당이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지나고 있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를 두고 재창당 수준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정의당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는 중이다. 6월2일 당 지도부 총사퇴, 12일 전국위원회를 거쳐, 20일 이은주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한석호·김희서·문정은 비대위원이 선임됐다. 비대위 활동 기간은 100일 남짓. 9월 차기 지도부가 선출될 때까지 당직선거를 준비하는 한편, 당 쇄신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더 심하게 아파야 제대로 치유하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다”(한석호 비대위원)는 말처럼, ‘더불어민주당 이중대’ 논란, 당 정체성 혼란, 리더십 부재 등 모든 문제를 끄집어내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비대위는 그 물꼬를 트는 기점에 서 있다. 비대위가 도출한 혁신안은 8월 임시당대회 추인 등을 거쳐, 차기 지도부에 권고안으로 전달될 예정이다. 6월2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이은주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6411버스 따라 서민 만나겠다
비대위원 인선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봐야 한다는 책임감, 짧은 활동 기간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한 것 같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정의당 내부에서 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담금질해온 인물이다. 김희서 서울 구로구의회 의원은 민주노동당 때부터 지역정치와 진보정치를 결합하며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문정은 광주시당 정책위원장은 창당 때부터 정의당에서 성장한 청년 정치인이다. 비대위가 해법을 찾아야 하는 세 분야(노동·지역·청년)를 상징하기도 한다.”
비대위는 당직선거라는 분수령에 도달할 때까지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은 이러하다. 비대위 산하에 설치되는 ‘정의당 10년 평가위원회’를 통해 당을 두루 평가하고 혁신안을 마련한다. 비대위가 가르마 탄 쟁점은 자연스레 당직선거로 옮겨간다. 차기 지도부 출마자들은 각자의 혁신 방안을 공개하는 한편, 비대위 혁신안에 대한 답변도 내놓는다. 그렇게 도출된 결론을 차기 지도부가 실행으로 옮긴다. 모든 문제를 노출시키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그간 제대로 된 토론이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백가쟁명식 토론 자체가 다시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전국위원회를 앞두고 시도당 위원장과 지역위원장 연석회의를 각각 거쳤다. 지역 순회 간담회도 시작한다.”
6월20일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발을 뗀 비대위는 비대위 차원의 즉각적인 조처도 발표했다. 먼저 “당사가 여의도 한복판에 있어야 정치할 수 있다는 공식에서 벗어나겠다”며 여의도 중앙당사를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민생과 밀착하는 ‘찾아오는 정의당’ ‘찾아가는 정의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당사 이전을 첫 번째 혁신 조처로 꼽은 배경이 궁금하다.
“당사 이전은 재정 상황을 고려한 비상조치임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 재정 위기 상황이다. 총선 이후 당의 부채가 누적됐다. 당사 이전을 검토하면서 고민도 깊었다. 정의당이 대변해야 하는 가난한 시민, 사회적 약자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정한 장소를 찾기 위해 (2012년 노회찬 전 대표의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언급된) 6411번 시내버스 노선을 돌아보고 있다.”
“노동하는 시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찾아가는 정의당’ ‘찾아오는 정의당’은 어떻게 실현되나.
“정의당이 시민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국민소통팀’ ‘현장대응팀’(가칭)으로 조직을 개편해 고유가·고물가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이 당사를 찾아오도록 길을 열고, 의원들이 직접 민생 현장을 찾아가려 한다.”
비대위와 과거의 혁신위원회를 겹쳐 보는 당 안팎의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2020년 정의당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현상 유지 수준인 6석(비례대표 5석·지역구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심상정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정의당 혁신위원회(위원장 장혜영 의원)가 구성됐다. 선거 평가, 새로운 리더십 구축 등을 논의하고 차기 지도부도 선출됐다. 그러나 혁신안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지난 혁신위와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국위원회에서 중·장기 비대위가 아닌 혁신 지도부 선출을 위한 비대위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은 혁신안을 6개월, 1년 걸려 만들어도 차기 지도부가 채택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번 당대회에서 채택하는 비대위 권고안은 차기 지도부 출마자들이 답하고 책임 있게 이행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역무원 노동자이자 서울시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운동가로 27년간 활동했다.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도 2021년 쌍용자동차 파업 손해배상 철회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노동문제에 집중했다. 2022년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으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확대를 요구하는 단식농성도 벌였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정의당은) ‘페미니즘만 하는 정당’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시대정신이다. 진보정당이 마땅히 가져가야 할 문제인데 페미니즘만 한다고 비친 건 (나머지 분야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변해야 할 노동하는 시민들이 있는데 안으로 담금질만 했다.”
정의당 위기의 원인은 어떻게 진단하나. 개인 의견을 듣고 싶다.
“(한숨) 시민들은 왜 정의당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런 고민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 이은주가 호명하고 대변해야 하는 이들의 삶을 지키는 것보다 정치개혁이나 거대담론에 (휩쓸려) 여의도 안에서 중심을 못 잡았던 것 아닌가 돌아보고 있다.”
‘시끄러워질’ 각오 한다
지난 2년여 돌이켜봤을 때 후회되거나 아쉬운 순간은.
“끝까지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가장 가깝게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다. 개인적으로는 반대 입장이 명확했다. 당내에서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했다. 국회의장에게 중재를 요청하고 중재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정의당 의원 전원이) 결국 찬성표를 던지게 됐다. 후회되는 지점이다.”
이 위원장을 비롯해 비례대표 의원 총사퇴 주장도 나온다.
“의원단이 더 크게 책임져야 한다는 당원들의 요구가 있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받아들인다. 당의 여러 대의기구, 지방선거 출마자 등을 만나며 따가운 질타와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의원단 차원의 혁신 방안을 도출하고 6월 말 당원과 시민들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시끄러운 비대위’를 예고했다. “이제껏 (당내 이견을) 봉합, 봉합, 봉합으로 묻어둔 건 아니었을까. 어차피 이견은 있고 어느 지점에선 합의해야 하는 거잖나. 이를 외면하지 않았나 후회된다. 시끄럽고, 시끄럽게 비대위 활동을 할 것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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