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정황' 정부 발표, 靑 첫 회의 뒤 34시간 만에 나왔다
유족 줄소송에 공은 검찰로..'대통령기록물 공개'가 관건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 결과가 1년9개월 만에 뒤집혔다. 윤석열 정부는 6월16일 해수부 산하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고(故)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 정황은 없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씨가 지난 2020년 9월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에 의해 피살됐지만, 그 배경으로 이씨의 자진 월북 정황을 강조했었다.
남은 쟁점은 세 가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건을 보고받은 직후 내린 첫 지시가 무엇이었는지, 문 정부의 구조 노력은 어떠했는지 등이다. 월북 정황을 언급한 정부 수사 결과에 청와대의 지침이 있었는지는 핵심이다. 이씨의 실종(2020년 9월21일) 이후 첫 관계부처장관회의(2020년 9월23일)가 열리고 월북 정황 발표(2020년 9월24일)가 있기까지 3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 간 첫 회의로부터 불과 34시간 만에 이씨의 월북을 가시화한 것이다. 이씨의 사망(9월22일 9시40분쯤)으로부터 48시간도 안 됐을 때였다.
'월북 정황' 정부 발표가 있기까지
이씨의 월북설이 나온 과정은 이랬다. 당시 정부 발표와 국회 회의록 등을 종합하면,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장관회의는 9월23일 새벽 1시부터 약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회의에는 서훈 실장 외에 서욱 국방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의 유엔(UN) 연설은 이날 새벽 1시26분부터 16분간 방송됐다. 연설은 사전 녹화분이었다. 관계부처장관회의가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예정된 새벽과 맞물려 열린 것이다. 정부가 사건을 심각하게 봤고, 논의 역시 긴박하게 흘러갔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씨와 관련된 첩보가 논의 테이블에 오른 점도 주목해야 한다. '월북설'의 근거로 정부가 내놓은 것은 첩보, 즉 SI(Special Intelligence·군 특수정보)였다.
관계부처장관회의는 같은 날 오전 10시 한 차례 더 열렸다. 하루 뒤인 9월24일에는 국방부의 브리핑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보고 등이 연이어 있었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에서 이씨가 자진해 월북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만행도 규탄했다. NSC는 이로부터 한 시간 뒤인 낮 12시 열렸다. 국회 국방위는 오후 4시40분쯤 진행됐다. 이러한 과정 끝에 진행된 국방위 현안보고에서는 '월북설'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씨의 월북을 자신했다. 그는 '첫 지시'를 묻는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월북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잘 봐야 된다고 이야기하며 지침을 줬다"며 "현재까지 내린 결론은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문 정부가 이씨의 월북을 주장한 핵심 증거는 SI였다. SI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이유였다. 당시 SI의 역정보 가능성, '월북'이 나온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서 장관은 9월23일 새벽 1시에 열린 관계부처장관회의와 관련해 "(회의에서) 첩보 수준을 가지고 논의했다"며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의뢰해 다시 토의하자' 이렇게 (결론이) 된 것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또 "첩보를 종합해 보는 회의"라며 "분석을 하는, 즉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 누가 신빙성을 더할 것인가, 누가 어느 방식으로 분석을 해서 이것을 신뢰도를 높여 나갈 것인가 하는 등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서 장관은 "(이인영) 통일장관은 이에 모니터하고 확인하고 의견 정보를 개진했다"고 부연했다.
월북설 반박한 이씨 동료들…고개 숙인 해경
해양경찰청의 중간수사 결과는 이로부터 5일 뒤 나왔다. 2020년 9월29일이었다.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었다. 해경은 같은 해 10월22일 이씨의 도박빚, 구명조끼 착용 등을 월북 근거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씨의 동료들인 무궁화 10호 선원들은 이씨의 월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 2020년 조사 당시 이렇게 진술했다. "월북이라고 나오는 게 터무니없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A씨), "(이씨가) 북한에 관련된 말을 한 적도 없고 북한에 대한 방송을 보거나 하는 것을 모르겠다"(B씨), "월북하기 위한다면 방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그 추운 바닷물에 그냥 들어갔다. 월북이 아닌 자살로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C씨) 등이었다.
이러한 무궁화 10호 선원들의 진술은 최근에야 공개됐다. 문 정부는 이들의 진술조서를 비공개했다. 1심 재판부가 지난해 11월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일부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문 정부가 이에 불복하며 항소한 것이다. 윤 정부는 6월16일 항소 취하 계획을 밝혔다. 유족은 하루 뒤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원들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실제로 청와대 보고를 거치면서 이씨의 월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월23일 국방부와 합참을 방문한 뒤 이처럼 밝혔다. 하태경 TF 단장은 "합참의 최초 상황보고는 2020년 9월22일 저녁이었는데, 그때 청와대에 올린 보고서를 열람했더니 월북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었다"며 "그런데 청와대 보고를 거치면서 24일이 되자 월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합참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TF는 지난 2020년 9월27일 서주석 NSC 사무처장이 국방부에 공문 지침서를 보내 '시신 소각'으로 확정했던 국방부 입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고도 했다. 서 처장은 "왜곡 지시를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칼끝은 청와대를 향했다. 국방부는 6월16일 "2020년 9월27일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사건 관련 주요 쟁점 답변 지침을 하달받았다"고 밝혔다. 해경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이러한 지침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문 정부가 월북의 주요 근거로 언급한 SI 관련 문제도 지적했다. 정봉훈 해경청장은 6월22일 "지난해 6월 국방부에 수사상 필요한 SI를 요청했다"며 "그러나 국방부 측이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사실상 월북 관련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은 "월북의 고의는 엄격하게 입증해야 한다"며 "최초 월북 혐의에 관한 증거 확보가 불가능하고 당사자가 사망한 사건의 소송 실익 등을 종합해 이번 사건을 종결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민과 유족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해경은 사건 당시 '짜맞추기 수사 결과 발표' 의혹에 휩싸였다. TF에 따르면, 해경은 지난 2020년 10월22일 간담회에서 이씨의 월북 이유로 '정신적 공황 상태'를 거론했다. 그러나 해경은 이씨의 심리 감정 의뢰를 다음 날인 10월23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의 내사 결과에 기재된 전문가 자문 의견 중 '(이씨가)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한 전문가는 7명 중 1명에 불과하기도 했다.
유족들, '윗선' 수사 개입 여부 등 책임 추궁
유족은 '윗선'의 수사 개입 여부 등 책임을 추궁했다. 이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6월22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종호 전 민정수석비서관,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집행방해·허위공문서작성 등이다. 유족은 문 정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이 해경에 지침을 내려 이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조작했다고 봤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6월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해경이 '수사 전부터 이미 월북으로 결론이 나있었다'고 양심선언했다"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월북이라는 큰 방향성에 결론이 나있었고, 이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머지는 억지로 짜맞춘 수사"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론은 거세다. 문 전 대통령이 최초 보고받은 뒤 3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다. 논란의 그날은 2020년 9월22일 오후다. 정부가 북측 해역에서 이씨를 발견했다는 정황을 입수한 건 이날 오후 3시30분쯤. 문 전 대통령에게는 오후 6시36분 최초 보고됐다. 이씨는 그러나 약 3시간 뒤인 오후 9시40분쯤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 시신은 오후 10시쯤 소각됐다. 유족에게는 이씨의 시신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은 명확하지 않다. 서욱 장관은 문 전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해 "제가 직접 지시받은 바는 없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해경 역시 같은 입장이다. 해경 관계자는 6월22일 TF 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문 전 대통령의 구조 지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유족이 서훈 전 실장과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에 대해 소를 제기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최창민)에 배당됐다. 이 사건은 공직자 범죄에 해당된다. 오는 9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행 전에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 중 하나다. 친형 이씨는 향후 국방부, 해경은 물론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소송도 준비 중이다. 청와대, 국방부, 해경 등 여러 부처와 관련된 만큼 검찰이 이와 관련해 대대적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유족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개입에 반대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6월20일 유족의 소송 예고와 관련해 "국민들 관심이 많은 사안"이라며 "(검찰에 고발되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할지, 아니면 어떻게 할지 신중하게 잘 판단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었다.
남은 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설특별검사제(상설특검)도 선택지다. 현행법상 법무장관은 상설특검을 가동시킬 수 있다.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 등에 대해서다.
고(故) 이대준씨의 명예 회복은 진행 중이다. 해수부는 이씨의 순직 처리를 약속했다. 유족은 그의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남은 건 진실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다. 이를 위해서는 6월17일 착수한 감사원 감사 결과, 청와대 기록물 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문 정부는 지난해 11월 원고 일부 승소한 1심 판결에 항소했고, 대통령 퇴임 전에 사건 관련 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했다. 유족이 국가안보실이 해경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받은 보고 내용 일부를 열람할 수 있게 됐지만, 문 정부가 이를 막은 것이다. 사건 관련 내용은 문 전 대통령 퇴임 전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됐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현행법상 최장 15년간(사생활 관련은 30년) 봉인된다. 현 정부는 항소를 취하했지만, 대통령기록물관은 6월22일 오후 기록물 공개를 거부했다.
대통령기록물이 공개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고등법원장의 영장 제시 등의 조건하에서다. 대통령기록관실은 6월22일 오후 대통령지정기록물 정보 제공과 관련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나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제시돼야 한다"며 "그 외의 다른 법률에 따른 자료 제출 요구나 열람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정보 목록도 검색이 불가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유족이 요구한 일반기록물 역시 없다는 입장이다. 기록관실은 "19대 대통령기록물의 기록관 이관 이후 정리 및 등록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이에 기록물 검색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조건 속에서 귀하가 요청한 기간(2020년 9월22~28일) 내 일반기록물을 대상으로 최대한 찾았지만 해당 기록물이 부존재한다"고 답했다. 기록관은 연내 일반기록물 정리 및 등록을 완료할 예정이다.
공개가 지연되면서 유족의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소송 일정도 빨라졌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의 조건인 고등법원장 영장 발부를 위해서다. 검찰은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단 반출 의혹 수사 과정에서 영장을 통해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했다. 지난 2013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수사와 관련해서도 기록물을 들여다본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의 수사 개입 여부를 알 수 있는 회의록 등은 보안 사안"이라며 "거대 야당이 있는 현재로서는 열람을 위한 영장 발부가 최선"이라고 했다. 아울러 유족은 국제사회 관심도 촉구할 예정이다. 유족은 아시아의원연맹, 미국 대사관 등과 접촉한 뒤 오는 9월12일 국제사회의 관심 촉구를 위한 해외 일정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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