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센인과 그 가족의 차별은 진행형

김수영 기자 2022. 6.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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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러나면 안 됩니다" "모자이크, 음성 변조는 꼭 해주시는 거죠?"

한센인의 삶, 특히 그 가족들의 생활을 보고 듣기 위해 전북 지역 한센인 정착촌에서 만난 한센인과 그 가족들은 카메라 앞에 서기 전 모두 이런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가 당일 거절한 분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건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보였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한센인은 모두 8,574명. 우리 주변에서 한센인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있지만 평생을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았던 그들에게 언론 노출은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사회적 낙인, 편견 속에 살았던 삶의 조각을 꺼낼 때마다 마스크 밖으로 설움이 새어 나왔고, 불만조차 쉽사리 드러내기 힘든 듯 인터뷰 내내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마디 이어갔습니다.
 
한센인 A 씨
"일본 사람들이 모든 한센인들 다 잡아서 소록도에 가뒀잖아요. 그때는 죽는 것이 부지기수로 많이 사람들이 죽고 그런 저거를 하고 해방이 되고 나서도 우리나라 정부에서 더 잘해준 것이 없어요. 그 하던 사람들 그대로 일본인들이 하던 그대로 하니까 소록도에서 수없이 탈출을 하려고 애를 썼고 또 탈출하다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다 바닷물에 휩쓸려서 사망하고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 두 번 다시 거기를 안 가려고 애를 썼고…."

"정부에서 땅을 사서 몇 평씩 떼어주고 집 한 칸, 방 한 칸 딱 해주고 그래서 이제 여기 와서 지금까지 사는데 그때 삶은 말할 수가 없어요. 모든 도로가 비포장에다 그냥 자갈밭이었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가축도 키우고 채소도 실어다 팔고…."

연고도 없는 곳에 강제로 이주해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자녀들에게는 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살고 버텼지만 사회적 차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며 괴로워했습니다. 자녀들은 한센병에 걸리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전염이 되는 것도 아닌데도 한센인 부모와 똑같이 취급당했다는 겁니다.
 

한센인 B 씨
"항상 부모로서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죠. 왜 자기를 낳아서 이런 고통을 주나 그리고 또 자기들이 학교를 다니고 어렸을 적에는 잘 모르는데 좀 크면 알잖아요 부모에 대해서. 우리 큰 애 같은 경우는 지금도 결혼 안 했는데, 그런 상처 탓이 아닌가 싶어요."

"부모하고 또 멀리 할 수밖에 없죠 자연히. 자녀들이 심지어 우울증도 있었고,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가 한센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이혼한 경우도 있어요"

어렵게 한센인 2세를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한센인 자녀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부모와 강제로 떨어져 살아야 했고,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들의 자리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차별을 견디다 못해 정착촌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센인 2세
"고아 아닌 고아로서 그 냉대를 받았던 그 설움 그것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문둥이 자식이라고 맞기도 하고 싸움도 했던 그런 경험이 굉장히 마음에 남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떤 동네에 산다고 하면 다들 한센인 정착촌에 산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학교 끝나고 일부러 다른 사람들 모르게 산을 넘어 집에 오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차마 부모를 버리고 정착촌을 떠나지 못했던 자녀들은 부모가 운영하는 양돈, 양계, 축사 운영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고령화, 환경 오염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축사 운영도 힘들어졌습니다.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정부 지원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한센인과 달리, 그 가족들은 사회적 낙인과 멸시 속에 살아왔는데도 정부 차원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에 대한 보상은 일본 정부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2019년 6월, 일본 구마모토 법원은 한센인 가족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그들이 학교에서 입학 거부로 교육받을 기회를 상실했고, 취업을 거부 당해 경제적 손실을 입었으며, 인생의 선택지가 제한되고, 가족과 생활할 수 없어 가족관계 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거론했습니다.


일본 법원의 판단은 같은 해 11월, 일본 정부의 한센인가족보상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해방 이전 한센인 가족에 대해 보상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일제강점기 강제격리돼 인권 침해를 받았던 우리나라 한센인 가족과 타이완 한센인 가족들이 일본 정부에게 보상받을 길도 함께 열렸습니다.

2020년부터 민간 주도로 한센인 가족 보상 청구단이 꾸려졌고, 2021년 4월 보상 신청을 한 끝에 지난 4월 10명이 첫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배우자와 자녀는 180만 엔(약 1,700만 원)을 받았고, 형제 자매 등은 130만 엔(약 1,200만 원)을 수령했습니다. 다만, 청구인이 해방 이전에 태어났고, 청구인의 배우자, 부모 형제 자매 등이 해방 이전에 발병해야 한다는 조건이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분명 해방 이전에 한센병에 걸린 건 분명했지만, 이를 입증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소록도 병원에는 그 기록이 남아있는 않은 경우가 많았던 겁니다.

한센인 수천 명이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있었던 걸 감안하면 보상 요청을 할 수 있는 대상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120여 명이 청구를 해놓고 일본 정부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보다 청구인 숫자가 적은 건 고령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굳이 자신이 한센인 2세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보상 청구단 변호사는 전했습니다.

한평생 차별 속에 살아왔던 한센인 가족들이 남은 삶이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관련 법 개정을 통해서 일본과 같이 2세들이 갖는 주거 문제, 학교 교육 과정에서 받는 차별 또 여러 가지 낙인으로 인한 고통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낙인 찍기와 차별에 의한 것임을 국가가 인정해주고 그에 따른 일정하게 보상을 해주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고령화된 한센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전용 요양병원 건립도 시급합니다. 편히 쉬어야 하는 요양시설에서도 그들은 또 다시 차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차별은 진행형입니다.

한센인 C 씨
"같은 병실에 있는데 한 병실에 비한센인하고 우리하고 같이 안 둡니다. 따로 둬요. 이건 아니잖아요.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지금도 그런 냉대를 받고 있다는 거야. 나이 먹었으면 정확한 치료라도 받을 수 있고 인격적으로 대우받으면서 노후를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관련 기사]
▷ 80년간 인정 못 받은 항일…소록도에 세워진 작은 기념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92957 ]
▷ 차별받던 한센인…일 정부는 보상 시작, 우리 정부는?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92958 ]

김수영 기자sw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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