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원 찾는 역학 발전 뒤엔.. 수많은 노예·죄수의 희생 있었다

이정우 기자 2022. 6. 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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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재앙 속 한 줄기 빛은 질병의 양상을 규명하며, 감염원을 찾는 역학(疫學, epidemiology)이었다.

책은 현대 역학의 대부분은 식민지, 노예제도, 전쟁에 따라 예속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질병을 관찰하고 치료하며 예방한 행동에서 발전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오늘날 의학의 발전은 이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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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전염병│ 짐 다운스 지음│고현석 옮김│황소자리

코로나19 팬데믹 재앙 속 한 줄기 빛은 질병의 양상을 규명하며, 감염원을 찾는 역학(疫學, epidemiology)이었다. 그런데 역학의 발전엔 수많은 노예와 죄수 등 예속된 자들의 강요된 희생과 가슴 아픈 삶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외면돼 왔다. 책은 현대 역학의 대부분은 식민지, 노예제도, 전쟁에 따라 예속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질병을 관찰하고 치료하며 예방한 행동에서 발전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오늘날 의학의 발전은 이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남북전쟁 때 백신 채취에 사람을 이용하는 인두법을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엄마 손을 잡고 울고 있는 흑인 아이를 백인 남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노예인 두 모자의 소유주와 의사. 소년이 도착하자마자 의사는 아이의 팔뚝을 날카로운 칼로 찔러 상처를 내고는 준비해온 천연두 딱지를 피가 나는 아이의 살갗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염되지 않은 아이의 몸을 이용해 다량의 ‘깨끗한 백신’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남북전쟁 당시 천연두는 무섭게 퍼져나갔다.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한 뒤였지만, 넘치는 질병을 감당할 물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남군의 의사들은 인두법을 떠올렸다. 그들에겐 백신을 채취하는 데 제약 없이 사용해도 좋은 깨끗한 몸이 있었다.

괴혈병의 발견도 노예제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이들의 존재는 역사 기록에서 배제됐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해군 군의관으로서 노예선에 배치된 토머스 트로터는 숨이 턱턱 막히는 배 밑바닥에서 쇠사슬에 묶여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노예들을 관찰하고, 죽음의 원인이 ‘더러운 공기’와 ‘영양 결핍’에 있다고 판단한다. 노예들을 갑판으로 끌어내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고, 인근 섬에서 과일을 구해 먹이자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트로터는 이 경험을 살려 괴혈병 전문가로 발돋움했지만, 자신의 논문과 저서에서 ‘아프리카 노예선’ 대신 ‘수많은 사례’나 ‘선박’으로 뭉뚱그려 제국주의와 노예무역의 폭력성을 지워버렸다.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재조명한 점도 흥미롭다. 나이팅게일은 이제까지 크림전쟁에서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한 간호사의 역할에만 초점이 맞춰졌지만, 실은 질병 전파에 관해 연구하고 분석하며 보고서를 쓰는 데 대부분을 할애한 ‘과학자’이자 ‘역학 연구자’였다.

책은 수많은 임상과 예후 관찰에 동원된 피지배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현재 우리의 건강은 이름 없는 조상들의 피와 고통에 너무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그리고 노예와 식민지 피지배인, 죄수와 군인들이 임상 대상으로 기능할 수 있던 배경엔 제국주의와 노예제도, 전쟁이 있었다. 제국주의와 노예제도는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의료시스템의 DNA에 깊이 각인돼 있다. 384쪽, 2만30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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