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재개발구역 '고양이 이사작전'.."까망아 이젠 떠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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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은 없네요. 포획틀을 놓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눈치를 챘나 봐요."
민운기 간사는 "재개발구역에 머무르다 철거 잔해물에 깔려 죽는 고양이들이 많다"고 했다.
동물권 단체 카라는 "조례에 정비구역 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으면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분들이 재개발조합에 관련 요구를 하기 편하다"며 "정비구역 내 동물 보호 조례 제·개정이 전체 지자체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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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들어간 텅 빈 동네에서
포획틀 놓아 길고양이 구조
"잔해물에 깔려 죽기 십상
재개발지 동물보호 조례 필요"
“아, 오늘은 없네요. 포획틀을 놓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눈치를 챘나 봐요.”
21일 오전 9시 인천 미추홀구 전도관 재개발구역.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는 전날 오후 설치한 포획틀을 확인하기 위해 재개발구역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언덕길은 오래 방치된 듯 창틀과 유리 조각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길 주변은 허리 높이까지 자란 잡풀들로 무성했다.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인 곳에선 뿌연 먼지와 함께 굴착기 기계음이 요란했다. 2020년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전도관 재개발구역은 지난해부터 보상과 이주가 시작됐다.
사람이 대부분 떠나간 이곳에는 새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길고양이 수십마리가 살고 있다. 민운기 간사는 “재개발구역에 머무르다 철거 잔해물에 깔려 죽는 고양이들이 많다”고 했다. 민 간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고양이를 구조해 안전지대로 이주시키기 위해서다. 올해 말 철거가 마무리될 때까지 최대한 많은 고양이를 이주시키려고 한다.
구조 작업은 포획틀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고 고양이가 그 안에 들어오길 기다려 붙잡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먹이로는 주로 캔참치가 사용된다. 먹이를 둔 장소를 조금씩 옮겨가며 고양이가 자연스럽게 서식지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구조법이지만, 철거 작업이 이뤄지는 급한 상황에선 그럴 여유가 없다. 민 간사는 “1시간도 안 돼 고양이를 구조할 때도 있고 하루를 꼬박 기다렸는데도 구조에 실패하기도 한다. 대중이 없다”고 했다.
구조된 길고양이는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은 뒤 계양구 효성동에 있는 쉼터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양호한 건강 상태가 확인되면 동네를 정해 일정 기간 창고 등에서 적응시킨 뒤 방사한다. 쉼터와 창고는 모두 고양이를 아끼는 시민들이 마련한 사설 공간이다. 연태성 복순이네보호소 대표는 “일주일 가량의 적응 기간을 두지 않고 곧바로 방사했다간 원래 동네에 있는 길고양이한테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구조되는 운 좋은 길고양이는 소수다. 더 체계적으로 고양이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싶어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문제다. 일부에선 ‘주인 없는 고양이를 왜 지켜줘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미 주인 없는 동물 보호를 제도화한 지역도 있다. 서울시가 그렇다. 2020년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동물보호 조례’에 ‘정비구역 내 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하며, 원활한 수행을 위해 동물 보호 단체에 예산의 범위에서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서울 외에도 정비구역 내 동물 보호를 위한 조례를 둔 곳은 부산시와 경기도다. 동물권 단체 카라는 “조례에 정비구역 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으면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분들이 재개발조합에 관련 요구를 하기 편하다”며 “정비구역 내 동물 보호 조례 제·개정이 전체 지자체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인천시 농축산유통과 담당자는 <한겨레>에 “지난해 관련 민원이 있었지만 동물 보호 조례를 개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반영하지 못했다”며 “다음 조례 개정 때 반영이 가능하도록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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