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남 얘기?.. '한국인 밥상'도 텅 빌 수 있다

나윤석 기자 2022. 6.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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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식량 위기 대한민국│ 남재작 지음│웨일북

지구 기온 1도 오를 때마다

식량 생산량은 3~7% 감소

자급률 20% 불과한 韓 비상

생산 늘리면 농민반발 한계

해외 공급망 다변화 나서야

개도국 투자 등 해법도 제시

‘식량 위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현안 중 하나다. 미국·캐나다의 기록적 가뭄과 에너지 가격 상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까지 복합 악재가 겹치며 국제 식량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의 ‘식량 위기 대한민국’은 제목처럼 한국 역시 이런 식량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당장은 식품 물가가 오르는 간접적 영향에 그치고 있으나, 곡물의 80%를 해외에서 수입할 만큼 낮은 식량자급률 탓에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 심각한 사태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로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도 참여한 저자는 흥미롭게도 ‘식량 안보’를 ‘기후변화’ 관점에서 접근한다. ‘뜨거워지는 지구’가 ‘밥상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책은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 더 나아가 생물 다양성 위기 사이에 놓인 연결고리를 분석하며 한국이 ‘굶주림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방안을 살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면 생물 다양성은 14% 감소한다. 또 ‘최종경고: 6도의 멸종’을 쓴 환경 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도 기온이 1도 오르면 희귀동식물은 멸종하고, 육상동물의 10%는 멸종 위기에 처한다고 예측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식량 공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구 기온은 이미 산업화 시대보다 1.1도 높아졌는데, 일반적으로 기온이 1도 오르면 식량 생산량은 3∼7%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1.6%)이 지속되면 약 30년 후인 2050년 무렵에는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선 매년 2∼3%의 식량을 증산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장 한국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겨울 기온이 평년보다 0.8도 오른 탓에 벌통에 응애(진드기)가 발생하면서 전국적으로 77억 마리의 꿀벌이 죽었다. 전 세계 식량 중 무려 63%가 꿀벌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통계를 감안하면 ‘기후변화→생물 다양성 위기→식량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먼 나라’ 일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한국의 식량자급률을 서둘러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쌀·밀·옥수수·콩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45.8%, 사료용까지 포함한 전체 곡물 자급률은 20% 수준에 불과한 만큼 다수확 벼 품종 재배 등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급률 높이기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생산량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큰 탓에 인위적으로 자급률을 높이면 농민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지난해 벼 생산량이 ‘고작’ 10% 늘었는데 쌀값 하락을 우려한 농가들이 정부에 ‘시장 격리’를 통한 가격 안정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 역시 농산물의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쌀을 제외한 다른 곡물의 경우 관세 장벽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려봤자 우리 소비자들이 몇 배 더 높은 가격을 주고 국내산 밀과 콩을 구매할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자급률 향상을 어렵게 만든다. 아울러 농촌에 새로 유입되는 청년들이 벼농사 대비 소득이 높은 딸기·토마토 등 시설원예 작물을 선호하는 현상 역시 자급률 정체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저자는 해외 공급망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은 곡물 수입을 미국 카길과 ADM사 등 세계 4대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수라는 얘기다. 또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지원과 투자를 늘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우수한 연구·개발(R&D) 인력과 기술력을 이식하면 개도국에서 늘어난 식량 생산의 혜택이 우리에게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식량 위기의 배후에 기후변화가 자리한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천문학과 대학원생과 교수가 지구를 멸망시킬 만큼 큰 혜성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주인공 랜들 민디 박사는 “제발 과학자들 말 좀 들어라”고 소리치지만, 그의 외침은 SNS에서 희화화되고 정치적 논쟁거리로 활용될 뿐이다. 기업가와 정치인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혜성을 외면하며 “하늘을 쳐다보지 마(Don’t look up)”라고 얘기한다. ‘식량 위기 대한민국’의 저자는 이 영화를 거론하며 메시지에 다시 한 번 강조점을 찍는다. 기후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우리를 먹여 살리는 식량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 처음엔 일부 국가에만 타격을 주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면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에도 파국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것. 그러니 이제는 ‘돈 룩 업’이라는 외침을 그만두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라는 것. 340쪽, 1만85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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