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 된 제자 .. 詩가 구원할 수 있을까

박동미 기자 2022. 6.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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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로스쿨 진학으로 헬레나를 떠난 저자에게 3년 만에 날아온 소식은 패트릭이 살인을 저질러 수감됐다는 것과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 대부분이 자퇴했다는 것이다.

패트릭과 마주했고, 면회를 이용해 다시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순진함과 오만함을 걷어낸 책은 오히려 순수한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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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과 함께 읽기│ 미셸 쿠오 지음│이지원 옮김│후마니타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람이 함께 노력하면 세상은 바뀔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럴 수 있다면, 지금 세계가 이 모양일 리 없으니. 누군가는 자꾸 이상을 품는다. 꿈을 꾼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상과 꿈은커녕, 마지막 신념마저 부서질 때까지. 책은 그 신념의 작은 조각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간다. ‘모범적 아시아인’으로 살아온 이민 2세 교사와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흑인 ‘문제아’ 학생이 교감하고 소통한, 저자의 경험으로 쓴 실제 이야기다.

저자는 대학 졸업 직후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남부 헬레나로 들어가 퇴학생들을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친다. 흑인운동의 역사적 뿌리를 가진 지역에서, 흑인 문학을 통해 학생들을 바꿔보겠다는 포부로. 그러나 빈곤과 차별에 익숙한 아이들은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버락 오바마의 연설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저자는 당시를 “충격적”이라고 회상한다. 아이들의 무례한 질문, 인종차별적 언행도 그랬으나 무엇보다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심술궂게 굴었다. 나를 중국년이라 불렀던 12학년생에게는 맥도날드 취직도 어려울 거라고 악담을 했다.”

학생들이 마틴 루서 킹에게 고무되고, 맬컴 엑스 전기에 매료되고,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을 읽기를 바랐던 저자는 이내 그 “염치없이 낭만적인” 생각을 버리고 전략을 바꾼다. 쓰는 것. 그 과정에서 문학적 재능을 보이는 소년 패트릭을 발견한다. 결석을 일삼던 패트릭은 시를 쓰고, 딜런 토머스 선집과 운율 사전을 읽으며 학교를 성실하게 나왔고, 성장하며 저자와 우정을 쌓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밝은 미래를 담보한 것은 아니다. 로스쿨 진학으로 헬레나를 떠난 저자에게 3년 만에 날아온 소식은 패트릭이 살인을 저질러 수감됐다는 것과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 대부분이 자퇴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는 자책하며 남부로 돌아간다. 패트릭과 마주했고, 면회를 이용해 다시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그들은 함께 시를 낭송했다. 볼드윈이 조카에게 쓴 편지 ‘나의 감옥이 흔들렸다’를 읽고,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나눈다. 패트릭은 “너는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도 사랑으로”를, 저자는 “순진함이 곧 죄다”를 꼽았다. 패트릭은 편지를 쓰며 문학적 탁월함을 발휘한다. 갓 돌이 지난 딸에게,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의 전형성과 예측 가능한 전개 등은 다소 진부하지만, 책은 끝내 특별하다. 헌신적인 교사의 미담도, 흑인 청년의 성공담도 아닌 그 둘 각자가, 그리고 함께 실패하는 얘기라서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순진함과 오만함을 걷어낸 책은 오히려 순수한 위로를 준다.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내내 연결될 순 없어도, 진정 연결된 순간을 맞이할 수는 있다고 저자와 패트릭의 문학적 연대를 통해 책은 말한다. 읽고 쓰는 순전한 기쁨을 함께 누리며 우리는 그저 한 ‘순간’을 경험할 뿐이라고. “그 짧은 순간 우리 사이에는 어떤 신비롭고 급진적이며 개연성 없는 평등이 존재하는 듯했다. 책을 읽으면 그런 일이 가능했다.” 작은 신념 한 조각이 이 흔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만들었듯, 그 ‘짧은 순간’이 있으면, 매번 실패하는 우리의 삶도 실패가 아니라고. 432쪽, 2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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