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동생은 문학작품, 오빠는 유머 깃든 인문서에 흥미

한겨레 2022. 6.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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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Book] 번역가를 찾아서]번역가를 찾아서-홍한결·홍한별 번역가
남매 번역가 홍한결·홍한별
동생 따라 출판번역계 온 오빠
일하는 방식도 흥미도 제각각
"같은 문장, 다른 번역 어떨까?"
만나면 번역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두 살 터울 오누이 홍한결·홍한별 번역가를 6월22일 서울 망원동에 있는 홍한별 번역가의 자택에서 만났다. 출판 번역가로선 동생인 홍한별씨가 오빠 홍한결씨보다 한참 선배다.

홍한결·홍한별 번역가는 두 살 터울 남매다. 출판번역 경력으로 따지면 동생 홍한별 번역가가 한참 선배다. 대학원(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재학 시절 번역 일을 처음 시작한 홍한별 번역가는 2003년 <권력과 테러>(양철북)로 데뷔해 지금까지 90권 가까이 책을 냈다. 2020년 애나 번스의 <밀크맨>(창비)으로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친구인 노지양 번역가와의 서신을 엮어 번역 에세이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동녘)를 펴냈다. 오빠 홍한결 번역가는 2018년 <고래책>(단추)으로 출판번역계에 데뷔했는데, 동생이 기억하는 오빠의 데뷔작은 그보다 훨씬 전에 나왔다.

“기억 안 나? 어릴 때 오빠가 집에 있던 영어 그림책을 번역하고 그림도 그려서 보여줬잖아.” “그랬나? 아버지가 외국대사관에 근무하셔서 집에 영어 그림책이 꽤 있었고 종종 번역을 하셨던 건 기억해.” “나 대학 1학년 때는 지인분이 의뢰한 책을 우리에게 맡기셔서, 아버지와 함께 번역한 적도 있는데, 그건 기억나?” “응. 번역료를 떼인 것도.”(웃음)

이런 사연으로 번역 일을 가깝게 두고 자란 남매가 작고한 아버지 홍순범씨와 작은아버지 홍순명 번역가와 함께 ‘번역명가 홍씨 가문’을 일구기까지는, 가업을 잃고 방황하던 오빠를 출판번역계로 이끈 홍한별 번역가의 공이 컸다. 홍한결 번역가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9·11 테러 당시 <시엔엔>(CNN) 동시통역을 하는 등 중임을 맡던 중 돌연 기업에 입사해 통·번역계를 떠났다. 그런데 2017년 홍한별 번역가가 오빠의 책장에서 최근 의뢰 받은 원서를 발견하곤 “이 책, 오빠가 한번 번역해볼래?”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번역하기 까다로운 책이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마침 그 책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더라고. 출판번역을 처음 해보니까 어땠어?” “우리 동생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알게 됐지(웃음). 동시통역을 할 때, 나는 시간을 두고 더 좋은 표현을 찾아서 완벽하게 옮기길 좋아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동시통역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 출판번역을 하니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는 게 참 좋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힘들다는 게 문제지.” “오빠가 완벽주의자라서 그래. 나는 대충 하고 노는 편인데.”(웃음) “어릴 때 어머니가 그러셨어. 한별이는 학교 다녀와서 숙제를 빨리 끝내고 놀러 가는데, 나는 끝까지 미루다 마지막에 한다고.”(웃음) “성격대로 일하는 거네. 오빠는 오래 생각하며 초벌을 완벽하게 하고, 나는 초벌을 거칠게 한 후 두 번, 세 번 만지며 다듬잖아.”

차이점은 또 있다. 홍한별 번역가는 최근 몇 년 새 <클라라와 태양>(2021, 민음사) 등이 호평받으며 문학작품 의뢰가 부쩍 늘었고, 본인 또한 문학 번역에 흥미와 애정이 커지는 참이다. 홍한결 번역가는 <인간의 흑역사>(2019, 윌북)나 <걸어 다니는 어원사전>(2020, 윌북)과 같이 유머 넘치는 인문학책을 우리 독자들이 웃으며 볼 수 있게 옮기는 일에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번역이, 의미는 충실히 전달하되 문장은 우리말의 특성을 살려서 완성도 높게 다시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요즘은 원문을 최대한 살리는 번역을 선호해서, 번역서를 보다 보면 ‘이 문장은 원래 영어로 이러이러하게 쓰여 있었겠구나’ 단박에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아. 나는 그게 어색하고 거슬리는데, 누군가는 낯설고 신선한 표현이라고 하니까 고민이 돼. 오빠는 어때?” “작가가 애초에 낯설고 신선한 느낌을 주려던 거라면, 그 직역투가 좋은 번역이겠지. 근데 아니잖아. 나는 번역문은 결코 원문의 가독성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번역가는 발버둥에 아우성을 쳐서라도 가독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독자에게, 작가가 의도했던 독서경험을 선사하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닐까?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요새 그림 그리는 꿈을 꾸나 봐.” “무슨 그림?” “그림 도구를 들고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그리려는데 도무지 비슷해지지 않아서 쩔쩔매.” “접근 좋은데? 보통 번역을 텍스트로 인식하는데 그림이라니.” “일종의 캐리커쳐 그리기지. 원작과는 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사람을 그린 거란 걸 독자가 알 수 있게 하는 거지.” “똑같은 영어 문단을 오빠와 내가 동시에 번역하면 각자가 지닌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거쳐 서로 다른 결과물이 나오겠지. 그래서 마법 같아.” “언젠가 시험해보자.” “홍 남매의 같은 문장, 다른 번역? 재밌겠다!”

글·사진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이런 책을 옮겼어요-홍한결·홍한별 번역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홍한별 옮김, 수 클리볼드 지음, 반비(2016)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큰 인명피해를 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의 성찰적 에세이.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자 홍한별 선생’이라 불렸다”고.

밀크맨
홍한별 옮김, 애나 번스 지음, 창비(2019)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룬 <밀크맨>은 작가에겐 2018년 부커상을 안겨줬고, 홍한별 번역가에겐 2020년 제14회 유영번역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이 작품의 원형과도 같은 작가의 첫 작품이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이 역시 홍한별 번역가가 옮겼다.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홍한결 옮김, 마크 포사이스 지음, 윌북(2020)

영어 단어의 어원을 유머러스하게 설명한 이 책을 어떻게 번역해야 한국 독자들을 웃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홍한결 번역가는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아재개그’까지 동원해 과감하게” 번역했고, 독자들에게 “‘현웃’(현실 웃음) 터진다”는 평을 받았다.

스토리만이 살길
홍한결 옮김, 리사 크론 지음, 부키(2022)

콘텐츠 전쟁의 시대에 끌리는 스토리를 만드는 방법을 안내한 책. 홍한결 번역가는 스토리 컨설턴트인 작가의 “독특한 포텐으로 가득한” 이 책을 “반드시 쉽게 읽히는 책을 만들겠다는 오기와 도전정신으로” 번역에 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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