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프랑스 국립 건축가..'도시에서 양심을 기대하지 말라'

한겨레 2022. 6.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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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글쓰기와 흡사하다.

그리고 건축가는 글쟁이라고 하려니 그건 좀 아니다 싶다.

근년에 등장한 글 쓰는 건축가 가운데 '글쟁이 건축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초보 작가를 어머니처럼 어르고 달래 겨우 종점에 이르게 끌어주었다는 출판사 편집장의 모습이 곳곳에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일단, '글쟁이 건축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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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한국인 프랑스 국립 건축가 임우진
질문 따라가는 공간·도시 이야기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방인 시선
'사람이 먼저인 도시'의 가능성
파리 18구 생뱅상 공동묘지. 파리에는 구마다 공동묘지를 두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소통하는 공원이다. 한국 공동묘지는 혐오시설이다. 왜 그럴까. 을유문화사 제공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l 을유문화사 l 1만6500원

건축은 글쓰기와 흡사하다. 설계도는 기승전결, 자갈과 콘크리트는 단어, 벽은 문장, 건물은 완성된 글. 그리고 건축가는 글쟁이라고 하려니 그건 좀 아니다 싶다. 근년에 등장한 글 쓰는 건축가 가운데 ‘글쟁이 건축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보이지 않는 도시>를 쓴 임우진. 프랑스 유학 뒤 그곳에 정착해 20년 넘게 활동해온 건축가다. 피렌체 국제현대미술비엔날레 디자인 부문 최고상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상’을 두 번 연속 받았다. 도미니크 페로와 함께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ECC)’를 설계해 국내서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가 쓴 첫 책이라는데, 읽어나가다 뒤돌아 다시 보고, 다 읽고는 첨부터 다시 읽었다. 허 참, 이 사람 물건이네?!

왜 그 차만 정지선 앞에 멈췄을까, 국회의원들은 왜 고함을 칠까, 왜 조상님을 산에 모실까, 소파는 왜 등받이가 됐을까, 왜 부자들은 벤츠를 탈까. 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공간 이야기 다섯 꼭지. 만남의 광장에서 누굴 만나는가, 왜 우리는 높은 건물에 열광할까, 모임의 끝은 왜 항상 노래방일까, 왜 아이들은 항상 어지를까, 누구를 위해 꽃을 심을까. 나도 늘 궁금해하던 도시 이야기 다섯 꼭지.

초보 작가를 어머니처럼 어르고 달래 겨우 종점에 이르게 끌어주었다는 출판사 편집장의 모습이 곳곳에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일단, ‘글쟁이 건축가’ 인정. 아무래도 감칠맛은 한국 30여년, 파리 20여년, 두 문화권에서 획득한 거주민이자 이방인이라는 시각에서 오는 듯하다. 거기에 플러스 수많은 여행 경험. 학교보다 길에서 건축을 배웠다고 할 정도다.

어느 건널목을 겨눈 몰래카메라. 운전자 대부분이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곳. ‘양심 냉장고’를 받을 ‘양심 운전자’는 없었다. 철수하려던 새벽녘. 정지선 앞에 홀연히 멈춘 소형차, 지체장애인 부부.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 진행자 질문과 “내가… 늘… 지켜…요”라는 대답. 첫 꼭지 ‘왜 그 차만 정지선 앞에 멈췄을까’ 첫머리에 든, 나도 기억하는 일화다. 나라면 정지선을 지켰을까? 낮이라면 모를까. 휑한 거리, 신호등이 기능을 잃고 통행 방해물이 되는 새벽녘에? 난 아니다. 차도 없으려니와 혹시 있다 해도 양심 냉장고 타기는 글렀군 하고 씁쓸했던 기억.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라니. 뭐 저따위 질문이 다 있어? 약간의 마음 찔림을 일순 덮어버렸던 분개.

지은이는 엉뚱한 데로 향했던 분개의 정체를 규명해줬다. 프로그램 자체가 잘못 설계된 거였다. 대부분이 신호등을 무시한다면 양심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라는 명징한 단언. 서울의 건널목 신호등은 건널목 너머 멀찌감치 설치돼 있다. 운전자가 정지선을 넘어도 잘 보인다. 유럽의 신호등은 건널목 앞쪽에 위치해 있다. 만일 정지선을 넘으면 봐야 할 신호등이 보이지 않으니, 위반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만들었다.

도시에서 양심을 기대하지 말라. 천차만별 인간들이 밀집한 도시의 모든 시스템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악하다’는 성악설에 기반해 설계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시민들이 착하든 그렇지 않든, 경찰이나 감시카메라가 있든 없든 일관되게 작동할 수 있어야 좋은 시스템이다. 절대 공감한다.

나머지 꼭지들도 이처럼 시원시원하고 퍼뜩 정신이 들게 한다. 어떤 꼭지는 정말 ‘꼭지 돌게’ 만든다.

임종업 <토마토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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