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 속 인물이 불쑥 성장해 곁에 온다면..
"생명애 담은 단어 '녹색 갈증'에 꽂혀"
2019년 실천문학 신인상 등단
"계속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작가 되고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를 움직인 힘 중 하나를 상상력이라고 했다. 종교나 국가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으며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범주를 좁혀봐도 인간 생존에서 '상상'의 역할은 꽤 크다. 현실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순간 덜어주기도 하고, 극한을 상상함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발붙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상상의, 즉 허구의 인물에 나를 대입할 수 있는 소설과 영화 등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나의 상상(소설) 속 인물이 경계를 넘어 내 현실에 들어와도 생존에 도움이 될까. 2019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 최미래(28)의 '녹색 갈증'은 이런 물음을 다룬 소설집이다. 더는 글쓰기를 하지 않는 1인칭 화자인 '나'의 곁에 화자의 소설 속 주인공 '윤조'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려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해버린 '윤조'의 등장과 소멸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려던 화자가 현실에 직면할 용기를 갖는 심리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최미래 작가는 전화 통화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마음에 대해 소설을 써왔고 '녹색 갈증'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작품에서는 일종의 상상 활동인 글쓰기로 생의 의지를 회복하는 셈이다. 제목 '녹색 갈증'도 생명애를 내포한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대중화시킨 개념인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를 말하는데, 이를 의역하면 '녹색 갈증'이고 직역하면 '생명애'가 된다.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는 작가는 "제목부터 미리 정하고 글을 썼다"고 했다.
'녹색 갈증'은 3편의 소설과 1편의 에세이를 한 권에 싣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중 하나로 발간됐다.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한 기획이다. 이 책은 '윤조'가 소설 속에서 등장하다가('프롤로그') 마지막에는 현실에도 나타나는('뒷장으로부터') 연작소설과 같은 독특한 형태를 취했다. '저자의 말'이자 한 편의 소설과 같은 에세이('내 어깨 위의 도깨비')로 마무리한 점도 특이하다. "견고한 틀을 만드는 장르 구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작가에게 어울리는 구조다.
지금의 우리를 그린 소설이란 점도 반갑다. 코로나19로 고립된 사람들,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한 '모두의 기일', 살던 동네마저 낯설게 만드는 비현실적 분위기. 현실의 공기가 글 안에 담겼다. 이전에는 소설을 쓸 때 내면에 집중했다는 작가는 2년여의 코로나19 시기가 "내 안의 감정도 외부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란 점을 환기했다고 설명했다. 전 세대와 시대가 공유하는 정서에 대한 고민도 했다. "세상 속에 살았던 사람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를 포착하는 게,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인 것 같아요."
'윤조'를 만들어낸 원천인 불안은 이제 막 시작하는 20대 작가의 현실에서 비롯한다. 등단을 할 수 있을까, 등단 이후에 청탁이 들어오긴 할까,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정말 있을까. 작가는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도 같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그에겐 글쓰기야말로 20대의 총체적 불안을 견디는 생의 조건이란 뜻으로 들렸다. 작가는 동인('애매') 활동을 함께 하는 서울예술대 동문 5명이 서로 의지하며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20대를 잘 정리하는 의미로 단편소설을 모아 조만간 첫 정식 단편집도 내놓을 계획이다.
신인 예술가에게 으레 던지는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어떤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사실 없다"면서도 "배수아, 박솔뫼 작가님처럼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쓰고 싶은 게 저절로 생기지는 않을 테니, 세상과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생에 의지를 갖듯이 (글쓰기에도) 의지를 갖고 해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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