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촌, 학생들이 사라진다
"인강에 익숙, 현장 갈 필요 없어" 공시생 발끊겨 식당 등 폐업속출
"연봉 적고 딱딱한 조직문화 싫어" 공무원 직업 자체 매력도 줄어
5년차 미만 사표, 3년새 2배로
지난 21일 오후 1시 30분쯤 찾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 거리. 이곳은 5000원 안팎 가격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원래 인근 학원을 다니는 7·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공시생들이 많은 노량진 일대 특성이 녹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23개 컵밥집 중 문을 연 곳은 9개뿐이었다. 이곳에서 22년간 장사를 했다는 이모(58)씨는 “10년 전만 해도 이 시간대면 가방을 메고 이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요즘은 휑하다”면서 “오히려 학생보다 컵밥 거리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이 더 많을 때도 있다”고 했다.
지난 20~21일 이 일대를 둘러보니, 코로나 확산 사태가 진정되고 거리 두기도 해제됐지만 인근 상권이 여전히 얼어붙은 채였다. 노량진역에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식권 10장을 4만5000원에 판매하던 한 고시식당을 비롯해 식당, 학원 등이 있던 건물에는 ‘임대 문의’ ‘폐업’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늘 학생들로 붐비던 학원들도 이젠 수강생 모집이 고민이다. 노량진의 한 경찰·소방 공무원 체력시험 학원은 3년 전만 해도 수강생이 200명쯤 됐는데 지금은 80여 명에 그친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주로 응시하던 20~30대가 줄어들면서 ‘공시의 메카’였던 노량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는 데다, 학원에 나와서 수업을 듣기보다 원하는 시간에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 걸 편하게 여기는 특성까지 반영된 탓이란 반응이 많다. 젊은 층 인구가 자체가 줄고 있는 영향도 있다.
20~30대 사이에서는 “공무원이란 직업 자체의 이점이 줄고 있다”는 반응이 많다. 공무원은 퇴직 후 연금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히지만, 연금이 나온다고 해도 최근 물가 상승세나 대기업과 비교하면 당장 받는 월급이 지나치게 적어 불만족스럽다는 사람이 많다. 또 상명하복 같은 경직된 직장 문화가 싫다는 젊은 층도 늘었다.
2016년 10월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윤수현(26)씨는 5년간 정부 부처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2020년 일을 그만뒀다. 윤씨는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긴 하지만, ‘20대를 이렇게 발전 없이 보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윤씨는 “농업 쪽에 관심이 생겨서 청년 농부를 꿈꾸며 창업 준비를 하는데 하루하루가 보람차다”고 했다. 1년 동안 경기도에서 일하다 지난달 그만둔 김모(40)씨도 “공무원이 한때는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젊은 공무원들 중에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실제로 일하다 보면 위에서 시키는 걸 그대로 따라야 하는 문화가 힘들었다”고 했다.
실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국가직 9급 공무원 공개경쟁 채용 시험 평균 경쟁률은 2017년만 해도 약 23만명이 응시해, 47대1(4910명 선발)이었지만 올해 응시자가 약 17만명에 그쳐 29대1(5672명 선발)까지 떨어졌다. 또 수십대 일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됐지만 몇 년 되지 않아 사표를 던지는 젊은 층도 많다.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실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용 5년 미만 공무원이 그만둔 사례는 2017년 5181명에서 2020년 9258명으로 급증했다.
이런 분위기가 커지자 노량진 일대 상인들 사이에서는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도 이 일대가 회복되지 않을까 봐 두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노량진역 근처에서 12개 방 규모의 스터디룸을 운영하는 이모(30)씨도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학생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 고민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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