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순

김창균 논설주간 2022. 6. 2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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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입학한 서울대 상대 24기는 경제학과 졸업생 49명 중 23명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다수가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관계에도 진출해 경제 정책에 관여했다.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은총재, 구본영 전 과기처 장관, 최광 전 보건복지 장관 등이 이 기수다. 외국 여행 나가기도 만만치 않던 시절에 동기들이 떼를 지어 유학길에 오르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러스트=박상훈

▶이들이 2학년이 된 1967년, 미 버클리대 박사 출신 조순 교수가 경제학과 강의를 시작했다. 케인스의 고전 ‘일반이론’을 교재 삼은 경제학 강독이었다. 그때까지 우리 대학 경제학 강의는 수요, 공급 곡선 달랑 그려 놓고 쌀 값, 연탄 값 파동을 논하는 수준이었다. 미국 본토에서 주류 경제학을 제대로 배운 조순 교수가 영어, 독어에 한시까지 곁들여 가며 설파하는 경제학 강의는 처음 경험해 보는 신세계였다. 젊은 학도들은 “나도 조순처럼 되고 싶다”며 너도나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 경제학의 바이블이 1948년 발간된 새무엘슨의 ‘이코노믹스’라면 대한민국 경제학 교과서는 조순 교수가 1974년 초판을 낸 ‘경제학원론’이다. 1990년 조 교수의 첫 제자 66학번 정운찬이 제2 저자, 정운찬의 첫 제자 78학번 전성인이 제3 저자로 차례차례 합류하면서 11판까지 나왔다. 조순은 경제부총리, 한은총재를 역임한 데 이어 정계에 진출해 서울시장과 고향 강릉 국회의원을 지냈다. “햇볕 정책이 북한에 무조건 유연해야 한다는 경직성에 빠졌다”던 조순 의원의 국회 외통위 발언이 기억난다. 경직성이라는 경제학 용어로 유연함이 경직화된 햇볕 정책의 모순을 질타한 것이다.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배운 조순은 서당 훈장님처럼 제자들에게 엄격했다. 학생들이 시국을 핑계 삼아 단체로 수업을 거부하자 “공부 안 하고 어떻게 나라를 구한다는 거냐”고 학점을 깎았고, 중간고사 때 커닝 기회 모색을 위해 뒷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에 “당당치 못하게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쳤다. 평생 경제학을 공부하겠다는 제자들에겐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할 각오가 돼 있냐”고 물었다.

▶나라 경제 걱정하며 평생을 보냈지만 집안 살림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서울대가 관악 캠퍼스로 옮긴 후 지은 봉천동 주택에서 25년 넘게 살았다. 자식들이 편한 곳으로 모시겠다고 하자 “내가 심고 가꾼 나무들이 이사 가지 말라고 말린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가 23일 9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대한민국 학계를 떠받쳐온 큰 나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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