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읽기보다 소리 내 정확히 읽게 하세요

김영훈 가톨릭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2022. 6. 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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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우리 아이 건강 상담 주치의]
배움이 느린 아이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 언어 발달이 늦어 의사 진료를 받았고, 발명왕 에디슨은 입학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했다. 내 아이가 또래보다 배움이 느리더라도 적절한 치료와 연습을 통해 성취의 궤도로 올라서도록 도와줄 수 있다.

◇아동 13~15%가 배움 늦어

배움이 느린 아이들은 또래보다 기초 학력이 2년 정도 늦다. 읽기·쓰기·셈하기 능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다른 교과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정보 처리가 익숙지 않고 작업 기억력이 떨어지다 보니 학습 효율이 올라가지 않고 공부에 대해 수동적이 된다. 배움이 지연될수록 습득하는 단어와 어휘가 부족해지고 갈수록 악화된다.

원인은 타고난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느긋한 성격이어서, 공부 이외 취미에 더 관심이 많아서 등 다양하다. 부모가 지배적이거나 재촉하는 성향일 경우, 불우한 가정환경에 처해 있거나 가족·친구 관계에서 정서적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인구의 13~15%가량이 배움이 느린 경계성 지능(IQ 70~84)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일부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나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가 겹칠 수 있어 별도 치료가 필요하다. 언뜻 봐선 지능이 낮지 않은데 교사나 부모 입장에서 학습 동기나 목표를 부여해주기 힘든 아이들이다. 배움이 느린 아이들은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부족해지면서 더 늘었다. 하지만 부모가 조금만 도와주면 점차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

◇읽기·셈하기·쓰기 훈련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지 5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의 DNA에는 ‘읽기’ 관련 유전자 코드가 없고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한다. 읽기가 느린 아이들은 눈의 추적 기능이 떨어지거나 시각·지각적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자모음 원리를 터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갈수록 새로운 단어에 덜 노출되고 읽기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조금만 길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읽기 학습은 낱글자와 소리의 대응 관계를 익히고 기억하는 단계부터 시작한다. 이어 글자에 나타나는 소리 요소를 구분해보고, 반복을 통해 유창하게 읽도록 하는 순서로 진행한다.

집 주변 간판이나 과자 봉지, 전단지나 그림책 등에 나오는 글자가 학습 소재다. 글자 하나씩 소리 내 읽어보는 연습을 한다. 내용을 이해했는지는 아이에게 묻지 않는다. 소리 내서 읽기를 완료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읽게 되면 자음, 모음의 구조와 함께 소리가 나는 원리를 설명해준다. 눈으로 글자를 따라갈 수 있게 되더라도 서두르지 않는다. 문장이 길면 쉴 곳을 연필로 표시해가면서 끊어 읽는다. 빠르게 읽으려 하다가는 글자를 빠뜨리거나 조사나 어미를 바꿔 읽을 우려가 있다.

아이가 이해할 수준의 낱말 50~200개가 있는 한 페이지를 3~4회 소리 내 읽으면 도움이 된다. 또 부모가 함께 읽다가 아이 혼자서 읽고, 감정을 담아보거나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읽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의 흥미를 북돋워준다.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

셈하기가 느린 아이도 많다. 조금만 숫자가 커져도 “그거 나중에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물을 숫자로 표현하고 규칙성을 파악하는 등의 훈련이 필요하다. 예컨대 “계란을 3개 깨보자, 소금을 2스푼 넣어보자”고 하거나, “피자 한 판은 8조각인데 4식구가 나눠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아이에게 질문한다. 손가락을 쓰기보다 최대한 머릿속 개념으로 암산하도록 한다.

20개 이하의 바둑돌을 늘어놓고 몇 묶음씩 어림잡아 나눠 본다. 바둑돌 20개를 5번에 걸쳐 나누면 4개씩 포함된다는 것을 깨칠 수 있다. 구구단은 입으로 외우도록 한다. 가장 쉬운 5단부터 외우고 2, 4, 8단은 수의 변화가 비슷해서 함께 외우면 편하다. 이어 3, 6, 9단에 이어 가장 불규칙해서 어려운 7단을 마지막에 외운다. 예컨대 종이 카드 앞면에 ‘4×7′, 뒷면에 ‘28′이라 적고 구구단 카드놀이도 해보자. 쓰기와 관련해선 남들이 알아보는 글씨를 쓰도록 반복 훈련한다.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깊게 생각하도록 경험과 습관을 심어줘야 한다. 매번 누군가 생각을 대신 제시해주거나, 대충 생각하고 마는 생활을 반복하면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

김영훈 가톨릭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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