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아이' 지키려는 분투..이 사회 약자들의 모습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2. 6. 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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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 - 안녕달 지음/창비/2만2000원

- 안녕달, 성인용 첫 그림 소설책
- 그림은 서사, 글은 중요한 쉼표
- 화려한 도시 소외자의 삶 투영

안녕달 작가가 성인을 위한 그래픽 노블을 냈다. 그래픽 노블은 그림과 소설이 함께 있는 형식의 작품을 말한다. 작가의 그림책 ‘수박 수영장’ ‘당근 유치원’ ‘눈아이’ 등은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아이에게 보여주려다 내가 먼저 푹 빠져버렸다”는 성인 독자도 많다. 이번에는 작가가 처음으로 성인을 위한 그래픽 노블을 선보인다.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안녕달 세계’를 만날 수 있겠다.

눈아이를 지키려고 찾아온 도시에서 여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유령이자 그림자 같은 존재다. 안녕달 그림. 창비 제공


안녕달 작가는 눈부시게 빛나다가도 햇빛에 녹아내리는 눈을 보면서 눈아이의 모티프를 떠올렸다. 2017년부터 꼬박 5년간 품고 다듬어 오면서 두 작품을 낳았다. 2021년의 그림책 ‘눈아이’와, 2022년의 그래픽 노블 ‘눈, 물’이다. ‘눈아이’가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상상력으로 겨울의 정취와 빛나는 유년의 한때를 뭉클하게 그린 작품이라면, 이번에 펴낸 ‘눈, 물’은 녹아서 사라지려는 눈아이를 지키려는 한 여자의 시공간을 담은 어둡고 묵직한 이야기이다.

‘눈, 물’은 이야기를 짓는 사람으로서 안녕달 작가가 지닌 감수성과 기량을 보여준다. 이 책은 글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그림의 힘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림만으로 288면의 장편 서사를 만들어 냈다. 역할을 최소화했지만 짧은 글도 의미가 있다. 글은 중요한 쉼표가 되어준다. 작가가 보내는 또 다른 신호다. 눈아이를 지키려는 여자의 절박한 마음을 따라 빠르게 넘기던 책장을 잠깐 멈추게 하며, 깊이 생각하게 한다.

첫 페이지를 펼친다. 눈 내리는 밤을 그린 그림 아래에 “겨울밤, 여자는 어쩌다 눈아이를 낳았다”는 문장이 놓여있다. 눈아이라면 녹아서 없어지겠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심상치 않은 시작이다.

황량한 곳에 외따로 사는 한 여자가 어느 겨울밤 눈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여자에게 다가와 안기려 한다. 하지만 여자의 온기 탓에 품에 안긴 아이의 손이 녹아버린다. 여자는 눈으로 손을 만들어준다. 눈으로 작은 인형을 만들어주고 아이가 노는 걸 지켜본다. 아이가 녹아 버릴까 봐 여자는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계절이 바뀌고 아이는 점점 더워지는 작은 방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그대로 두면 아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여자는 아이에게 필요한 ‘언제나 겨울’이라는 장치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간다.

도시는 여자에게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더 화려하게 치장하고, 더 빨리 가야 하고, 미리 준비해야 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도시에서 여자는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유령이자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여자는 눈아이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여자의 노동과 절망, 피맺힌 맨발,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 흐르는 눈물이 눈길을 오래 붙잡는다. 여자의 시간과 공간은 어둡고, 무겁고, 고통스럽다.

책을 보는 동안 ‘여자가 눈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말고도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고 “제발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눈물 흘리던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자라고 있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있다. 발전을 위한 재개발이라는 명분에 내몰려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도 생각났다. 그렇게 사라지는 마을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떠오른다.


눈아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누구나 눈아이이거나 여자의 처지에 처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아이와 여자가 겪는 고통은 사실 우리가 다 아는 문제다. 알면서도 짐짓 못 본 척, 비겁하게 피해 온 ‘불편한 진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눈아이가 그대로 사라져도 되는 존재인지 묻는다. 세상에 지워져도 괜찮은 존재는 없다는 진실, 누구나 소중한 것을 지킬 원리가 있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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