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울, 경전 베껴쓰며 달랬죠… 신도 寫經 3000권 넣은 투명탑 탄생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2. 6.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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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삼룡사 주지 무원 스님, 신도들이 손으로 쓴 사경 모아
“법회 참석 못해 우울한 신도에게 기도하며 써달라 권해드렸어요”
서울 망우동 삼룡사 주지 무원 스님이 신도들이 코로나 기간 베껴쓴 법화경 사경을 내부에 넣은 사경탑을 설명하고 있다. 투명한 탑 안에 사경 노트가 꽂혀 있다. /김한수 기자

서울 망우동 천태종 삼룡사(주지 무원 스님) 3층 법당. 부처님 왼편에 천장에 닿을 듯 탑이 하나 서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탑 내부가 투명하게 보이고 안에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사경탑(寫經塔)’이다. 삼룡사 신도 2000여 명이 지난 1년여 동안 정성을 다해 한 자(字) 한 자 손으로 쓴 ‘법화경’ 등 사경 3000권이 탑에 가득 차 있다.

삼룡사 사경탑은 ‘코로나 시대 신심(信心)의 기억’이다. 현재 천태종 총무원장을 맡고 있는 무원 스님이 삼룡사 주지로 부임한 것은 지난해 2월.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법회를 열지 못했다. 신도들 얼굴도 못 봤다. 스님은 신도들 집마다 7권짜리 ‘법화경’과 ‘육방예경(六方禮經)’ ‘무량의경(無量義經)’ 등의 사경 노트를 택배로 보냈다. 각 경전엔 굵은 글씨로 경전 말씀이 인쇄되어 있고, 아래는 한 줄씩 비워놨다. 위의 경전 구절을 빈칸에 그대로 베껴 쓰도록 한 것. 무원 스님은 “절에 오지 못하니 신도들이 우울감을 호소해 사경을 권했다”며 “사경할 때 기후 위기 극복, 생명 존중, 세계 평화, 남북통일 등을 기도하며 써달라고 신도들께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사경은 전통 불교 수행법의 하나. 포교와 공덕을 쌓기 위해 경전 내용을 베끼는 행위 또는 베낀 경전을 가리킨다. 모여서 법회를 하지 못하는 기간, 신도들은 부처님 말씀을 베껴 쓰며 신앙 생활을 이어갔다. 사경을 마친 신도들이 노트를 절에 보내면 다른 사경 노트를 보냈다. 올해 초부터 사경을 마친 노트가 쌓여갔다. 무원 스님은 “전대미문의 코로나 역병 고통을 신심으로 승화한 증거인 사경 노트를 이 시대의 문화재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투명 사경탑’ 아이디어가 나왔다. 과거의 탑에도 사경이 봉안되곤 했지만 돌이나 나무로 밀봉했기 때문에 평소엔 내부를 볼 수가 없었던 점을 창의적으로 보완한 것.

삼룡사 사경탑 내부에 봉안된 사경 노트. 윗줄의 경전 내용을 아래줄에 베껴쓰도록 만들어졌다. /김한수 기자

탑 제작은 단청 전문가인 이경열씨가 맡았다. 사경 노트 크기에 맞춰 7층 탑을 설계했다. 종이 책 3000권은 무게도 상당했기에 탑의 뼈대는 알루미늄으로 튼튼히 세우고 사경 노트를 꽂았다. 4면은 투명판을 둘러 사경 노트가 보이도록 만들었다. 바깥은 목조와 플라스틱을 이용해 전통 한옥의 처마와 기와지붕 모양을 만들고 각 모서리마다 불상도 모셨다. 이렇게 전체 높이 360㎝에 이르는 사경탑이 탄생했다.

무원 스님은 “신도님들이 이 탑을 볼 때마다 사경하면서 코로나를 견뎌낸 일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삼룡사는 26일 오전 10시 ‘지구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사경탑 및 사경 봉정 법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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