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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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지인이 결혼하여 신방을 꾸몄는데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었다.
신혼부부라면 공동주택을 선호하는 터라 신랑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플라스틱류의 사용이 없을 때라면 거의 모든 쓰레기들은 이내 썩어서 자연과 동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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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 또한 그런 건강한 사이클을 그려낸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 김인후는 시조 작품으로 그 이상을 잘 그려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 산 절로 물 절로 산수 사이에 나도 절로 / 그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절로’를 아홉 번이나 반복하면서도 어색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연스러운 리듬을 만들어내는 게 일품이다. 산이든 물이든 온 자연이 다 절로 존재하는 이치를 지니고 있으니 그 속에 사는 인간 또한 그 이치대로 절로 살고 절로 늙다가 절로 죽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쉬워 보이는 ‘절로’가 현실에서는 그리 만만치 않다. 이규보의 ‘괴토실설(壞土室說)’에는, 월동 준비를 위해 토실을 마련한 종들을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종들은 겨울에 화초나 과일 등을 저장하기에 좋고 길쌈하는 부녀자들에게도 편리하고 날이 추워 손이 터지는 일이 없다는 등 그 좋은 점을 쭉 열거했으나, 이규보는 종들의 노고를 치하하기는커녕 호되게 야단쳤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이 정상적인 이치인데 그걸 어기는 것은 하늘의 명을 거역한다는 이유였으며, 토실을 허무는 것으로 끝난다.
이규보의 처사는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더구나 자신은 험한 일을 안 해도 되는 입장에서 추위 속에 일을 해야 하는 아랫사람에 대한 온정을 보이지 않는 게 영 불편하다. 그럼에도 이규보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 있다면, 혹여 편리함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러움을 압도하여 ‘절로절로’의 건강한 사이클을 훼손하지는 않는가 하는 점이다. 부채를 버리고 선풍기를 지나,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절을 지내면서 어디까지가 ‘절로’인지를 헤아려보게 된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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