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카슈끄지 사건 후 첫 터키 방문
언론인 살해로 관계 악화됐지만 경제난 터키, 투자 유치위해 '구애'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2일(현지 시각) 터키를 방문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터키 방문은 2018년 10월 터키에서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이후 처음이다. 사건 이후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던 사우디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난과 경기 침체 확산을 기회로 삼아 외교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터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빈 살만 왕세자는 터키 수도 앙카라의 대통령 청사에 도착해 에르도안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했다. 회담에 앞서 두 정상은 언론 앞에서 악수하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두 정상은 일대일 회담을 한 뒤 양측 주요 관계자를 포함한 확대 정상회담, 공식 환영 만찬을 이어갔다. 로이터 통신은 “양국이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겠다는 결의를 강조했다”며 “특히 통상과 안보, 에너지, 관광 분야의 협력을 증진하는 데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전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해외 순방 일정에 터키가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글을 써 온 카슈끄지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된 이후 터키는 사건을 조사하며 빈 살만 왕세자를 궁지로 몰았다. 배후로 지목된 빈 살만 왕세자는 부하들이 독자적으로 벌인 범죄라고 해명했지만, 그가 지시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제시됐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 앞서 관계 복원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20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해 사우디의 투자가 절실한 터키는 적극적인 ‘구애 작전’에 나섰다. 지난 4월 터키 법원이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궐석재판을 중단하고 사우디에 재판을 이관했고, 5월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와 포옹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내년 6월 재선을 노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극심한 경제난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70%를 돌파하고, 지난해 초반만 해도 7리라 수준이던 달러 대비 리라화 환율이 최근 17리라까지 치솟으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고 있다.
중동의 맞수인 이란의 군사 행동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보다 많은 나라의 지지가 필요한 사우디도 지난해부터 터키와 관계 개선을 모색해 왔다. 특히 사우디는 리비아 동부 군벌에 납치돼 2년여 억류된 터키인들의 석방을 위해 중재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마지브 빈 압둘라 알카사비 사우디 상무장관이 이스탄불을 방문해 푸아트 옥타이 터키 부통령과 만났다.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의 소너 카갑타이 선임 연구원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재선이 전부이고, 사우디도 위기 대비책을 강구하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일 이집트를 방문한 빈 살만 왕세자는 터키에 이어 요르단도 찾는다. 다음 달에는 걸프협력회의(GCC) 참석을 위해 사우디를 방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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