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사 선택권 보장"..노동계 "주 52시간제 무력화"

이혜리 기자 2022. 6. 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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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하는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장 노동시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는 게 골자
‘기본 40시간 + 연장 48시간’ 땐 주 88시간 노동도 가능
여소야대 상황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 어려울 듯

고용노동부가 23일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의 핵심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를 “노사 모두를 위한 선택권 보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심각한 장시간 노동 국가인 데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하기 어려운 한국 실정에서 이 같은 정책방향은 결국 노동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계는 사실상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이날 발표한 개혁방안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연장 노동시간의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법상 일주일에 12시간까지만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다. 기본 40시간에 12시간을 더해 주 52시간을 맞추는 구조다. 그러나 월 단위로 변경되면 한 달 연장 노동시간 48시간(4주 기준)이라는 한도만 지키면 된다.

일주일 내의 연장 노동시간 한도는 없어지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기본 40시간에 연장 48시간을 더해 일주일에 총 88시간까지 일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아무런 제한 없는 초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연장 노동시간의 월 단위 확대 관리가 아니라 ‘1일 단위’의 최장 노동시간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 확대도 마찬가지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1~3개월 단위(정산 기간)로 52시간 이상을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이 정산 기간을 1년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번 노동부 발표에 어느 기간까지 늘릴 것인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일별 또는 주별 최대 노동시간 한도를 정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고스란히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다.

노동부는 이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 방안을 개별 사업장에서 시행할지는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4%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하위권인 상황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장관은 연공 중심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는데, 기본적으로 일선 사업장의 임금체계는 노사 당사자들이 정하는 것인 만큼 노동부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또 노동계는 연공 중심 임금체계의 문제점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중장년 노동자 임금이 깎일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본다.

노동부는 제도 개편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며 이 연구회에서 객관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노사 의견도 수렴한다고 했다. 연구회의 연구 결과를 노동부가 받아 검토한 끝에 최종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의 제도 개편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간 규정은 근로기준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꾸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이어서 정부의 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장관은 이번 노동시간 제도 개편방향이 주 52시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노동계는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한다고 보고 있어 향후 갈등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이 장관이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전혀 없이 편법적인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정책만 내놔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말뿐이고 대책은 거꾸로”라며 “이번 발표는 사용자단체 요구에 따른 편파적 법·제도 개악 방안”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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