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7평 사무실의 기적

이노성 기자 2022. 6.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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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998년 IMF외환위기의 칼바람은 매서웠습니다.

30대 기업 중 17곳이 해체되거나 도산하면서 100만 명 넘게 실직.

기업 전용 온라인 금융시스템인 '펌뱅킹'과 교통카드의 원조인 하나로카드를 처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전자금융 기술 시장을 우리가 개척하자!" 국내 핀테크 기업 맏형인 웹케시그룹의 탄생 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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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998년 IMF외환위기의 칼바람은 매서웠습니다. 30대 기업 중 17곳이 해체되거나 도산하면서 100만 명 넘게 실직. ‘신의 직장’이던 금융권에서만 15만 명이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부산은행과 경쟁하던 동남은행도 KB국민은행에 흡수합병. 그때 동남은행 임직원들은 참 많이 울었습니다.

금융권 후발주자이던 동남은행의 강점은 뛰어난 전자금융기술. 기업 전용 온라인 금융시스템인 ‘펌뱅킹’과 교통카드의 원조인 하나로카드를 처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일까요. 1999년 동남은행에서 내쫓긴 8명은 부산의 한 7평짜리 사무실에 모여 소리 칩니다. “전자금융 기술 시장을 우리가 개척하자!” 국내 핀테크 기업 맏형인 웹케시그룹의 탄생 비화입니다. 요즘 대세인 가상계좌는 물론 편의점 ATM기·기업 인터넷 뱅킹 상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 바로 웹케시.

23일 부산 동구 메리츠타워 11층에서 열린 웹케시그룹 부산IT센터 오픈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웹케시는 ‘개발자 품귀 현상’도 예상했더군요. 2013년부터 캄보디아의 우수 인재들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양성해 채용하고 있거든요. 캄보디아 대기업들도 믿고 채용하는 덕분에 졸업생 취업률은 100%. 개발자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도 웹케시가 인력난에 시달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석창규 웹케시그룹 회장은 늘 고향 부산에도 IT교육센터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다. 부산에서 안 될 게 뭐 있겠나. 서울보다 멋지게 운영해 IT 인재들을 키워보겠다.” 마침내 웹케시그룹 부산IT센터가 23일 문을 열었습니다. 이날 부산을 찾은 웹케시 강원주 대표는 “IT센터가 고향 후배들의 열정이 현실화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웹케시그룹 계열사 쿠콘 김종현 대표는 “한 순간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웹케시처럼, 불가피하게 수도권으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고향 후배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면 ‘지역소멸’ 우려도 줄어들 겁니다. 동남은행의 귀향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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