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암흑기, 슈퍼리치는 그림에 돈 묻어둔다

전지현 2022. 6. 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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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미술장터 스위스 아트바젤 역대급 매출
금융시장 불안에 안전자산으로 그림 찾아
급등락 적고 블루칩 작가 상승 여력 높아
팬데믹 이전 호황으로 귀환 신호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관람객들이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형 조각 `거미` 아래를 지나다니고 있다. [사진 제공 = 아트바젤]
지난 14~19일 스위스 국경 도시 바젤에 위치한 박람회장인 메세바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미술장터 '아트바젤'. 4000만달러(약 521억원)에 팔린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형 조각 '거미'(1996) 다리 사이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슈퍼 컬렉터(큰 손 수집가)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스위스 대표 갤러리 하우저&워스는 유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이 대형작품을 부스 중앙에 설치해 단숨에 팔았을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출신 작가 아쉴 고르키의 1940년대 회화를 550만달러(72억원)에, 프랑스 화가 프란시스 피카비아의 1940년대초 그림을 400만달러(52억원)에 판매하는 등 14일 VIP 개막 첫날에만 매출 7500만달러(974억원) 이상을 올렸다.

주가와 코인 폭락으로 미술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아트바젤에선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와 경제 위기의 그림자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올해 참가한 40개국 289개 갤러리들 대부분이 팬데믹 이전 수준 매출로 회복했다고 밝혔다. 여행 제한이 풀리면서 오랜만에 아트바젤을 찾은 '큰 손'들이 불안한 금융자산 대신 그림 투자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림은 가격급등락이 크지 않은 장기 투자 대상으로 감상의 기쁨을 주는 가치 소비재다. 소장 이력이 분명한 거액 작품은 도난을 당해도 찾을 가능성이 높아 '벽에 걸어두는 금고'로 통한다.

독일 유명 갤러리 에스더 쉬퍼 관계자는 "작정하러 돈 쓰러 온 컬렉터들이 너무 많아 코로나19 이전 판매보다 좋았다. 우고 론디노네, 필립 파레노, 리암 길릭 등의 작품 30여점을 첫날에 판매했으며, 1982년생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 작품 구입 문의는 아트바젤이 끝난 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미술 거장의 수작이나 신진 작가의 대표작 매입 경쟁이 뜨거웠다. 뉴욕, 런던, 파리, 홍콩 지점을 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설립자 데이비드 즈워너는 "최고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 그 어느 때마다 구매 결정이 빨랐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쿠바 출신 작가 펠렉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조명 설치 작품을 1250만달러(162억원)에, 남아공 화가 마를렌 듀마 작품을 850만달러(110억원)에 팔았다.

데이비드 즈워너 부스
작가가 선호하는 미술관과 기존 단골 손님에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작품을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신진 컬렉터들도 부지기수였다. 지난 16일 아트바젤에서 만난 이영주 페이스 갤러리 서울 시니어 디렉터는 "요즘 뜨는 젊은 블루칩 작가 로버트 나바, 로이 할로웰, 메이샤 모하메디 작품은 줄서서 사야 한다. VIP 고객에게만 파는데 대기 리스트가 상당히 길다"고 밝혔다.

뉴욕, 런던, 제네바, 홍콩, 서울 등에 지점을 둔 페이스 갤러리는 아트바젤 기간에 미국 액션페인팅 대가 조안 미첼 그림 'Bergerie'(1961~1962)를 1650만달러(215억원)에, 미국 거장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1987년작 'Rose Dam(Shiner)'을 120만달러(15억원)에 파는 등 30여점 판매를 완료했다. 유럽 명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도 라우센버그의 1980년대 실크스크린 작품을 350만달러(45억원)에 팔았다.

페이스 갤러리 부스
세계 톱 갤러리 가고시안에선 1980년생 미디어아트 작가 조단 울프슨 작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차세대 작가 강세를 이어갔다.
가고시안 갤러리 부스
국내에서는 국제갤러리만 부스를 차렸으며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2014년작 '묘법 No.140416'(5억원대), 하종현의 1994년작 '접합 94-95'(2억원대), 안개 낀 풍경을 그리는 이기봉의 2014년작 'Matters of Void'(1억원대), 설치미술 양혜규 작품(1억원대), 박진아 회화(4000만원대) 등을 팔았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유럽과 미국 컬렉터들의 관심이 단색화에서 다양한 한국 미술로 확대되고 있다"며 "국내처럼 기존 슈퍼 컬렉터 외에도 젊은 신진 컬렉터층이 늘고 있는게 확연히 보였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부스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던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TV작품 '콜럼버스 로봇1991'은 런던 갤러리 앤니주다파인아트 부스 전면에서 관람객들의 인증샷 명소가 되어 있었다. 한국 추상미술 거장 이우환 '대화' 연작과 '관계항' 연작은 영국 리슨 갤러리 부스 전면에, 런던 화이트 큐브와 도쿄 화랑은 박서보 '묘법' 연작을 내걸어 한국 작가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 샹탈 크루젤 갤러리도 양혜규 작품을 8만유로(1억원)에 팔았다.
런던 갤러리 앤니주다파인아트 부스 전면에 있는 백남준 TV작품.
리슨갤러리 부스 전면에 있는 이우환 작품.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올해 아트바젤 관람객은 지난해 6만여명보다 늘어난 7만여명으로 집계됐다. 참여 갤러리와 작품 선정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아트바젤은 1970년 에른스트 바이엘러 등 화상(畵商)들의 주도로 시작해 매년 6월 개최되고 있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1994년부터 28년간 후원하고 있으며 바젤 뿐만 아니라 마이애미, 홍콩, 파리에서도 아트페어를 열고 있다.

[바젤(스위스)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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