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지역정당에 주목한다

한겨레 2022. 6.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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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3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무투표 실시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번 선거에서 전북지역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자는 36개 선거구 중 22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다. 연합뉴스

[그래도 진보정치]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지방선거가 끝나고 상당히 지났는데도 그 결과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전국에서 광역의원을 872명 뽑는데, 그 가운데 12%가 넘는 108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2988명을 선출하는 기초의원 중에서도 10%에 가까운 294명이 투표 없이 당선됐다. 양대 정당 중 하나가 만년 여당인 지역에서 그 당 공천자 한명만 출마한 선거구가 많았던데다 다른 지역에서도 두 당이 기초의원 2인 선거구를 만들어 사이좋게 동반 당선된 결과다.

정당은 본래 시민들이 대의민주주의를 원활히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다. 시민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대의제에 참여하다 보면 엘리트나 돈 많은 유력자가 쉽게 권력을 손에 쥐고 모든 결정을 좌우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노동자를 비롯한 보통 시민들이 이에 맞서고자 창안하고 발전시킨 조직 형태가 정당, 특히 대중정당이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조합이 자본의 힘에 균형추가 된 것처럼, 시민들은 정당을 활용해 부와 권세에 맞서는 대항력을 키웠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6공화국에서 정당이 하는 일은 이와 정반대다. 양대 정당은 시민들이 결정 과정에 손쉽게 참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도리어 그런 참여를 막는 장치가 되어 있다. 마땅히 시민들이 선출해야 할 공직자가 양대 정당에 의해 ‘임명’된다. 이쯤 되면 일당 독재 국가에서 정당이 하는 역할과 뭐가 다른가 싶다. 차이가 있다면, 거기에서는 한 정당만 군림하는 데 반해 여기에서는 그런 정당이 두개라는 것 정도랄까.

이런 현실에 답답해하는 이들 사이에서 요즘 부쩍 주목받는 대안이 지역정당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광역시·도 5곳 이상에 당원 1천명 이상씩 조직을 갖춰야 정당으로 인정받는다(정당법 제17·18조). 또 중앙당은 수도에 있어야만 한다(〃 제3조).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처음 정당법을 제정하며 도입한 경직된 규제조항이다. 양대 정당이 기득권을 누리며 정치를 계속 독점하기에 딱 좋은 제도적 조건이다.

지역정당을 주창하는 이들은 이런 정당 체계를 혁파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뜻있는 시민들이 어떤 내용이나 규모, 조직 형태로든 자유롭게 정당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동네 수준에서, 광역시·도 안에서 현재의 전국정당과는 전혀 다른 정당, 즉 다양한 지역정당이 등장해 활동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의원 무투표 당선 같은 일은 좀처럼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양대 정당이 자신들의 안온한 독점 구조를 깨뜨릴 지역정당을 허용할 리 만무하다. 선거법 개혁도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박살내는 두 당인데 현행 정당법 개정에 나서길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적극적인 지역정당 주창자들은 정당법 개정 전에라도 지역정당들을 실제로 설립해 기성 정당들을 압박하려 한다. 정치 현실을 아래로부터 바꾸어 양대 정당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의미와 가능성에 관해서는 더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한국 정치의 새 시대를 미리 알리는 중대한 징표임은 틀림없다. 정당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오히려 가로막는 6공화국 정당 체계는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역정당은 이 낡은 체계에 도전하는 실험과 반란이 아래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20여년 전, 진보정당운동은 참신한 정당 실험을 통해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끈 바 있다. 민주노동당은 한국 사회에 처음 등장한 본격 대중정당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앙집권적 대중정당 모델은 양대 정당에 포획돼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진보정당운동이 다시금 정당 모델 혁신을 선도하고자 한다면, 지역정당에 주목해야 한다. 지역정치 식민화의 치유책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에 부합하는 새 정당 형태의 맹아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정당이 다시금 시민들의 간편한 도구로 되돌아가는 시대의 실마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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