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스의 농담

한겨레 2022. 6.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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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봉쇄로 팬데믹에 맞서던 대만이 오미크론 침투와 더불어 정책을 바꾸고, 그 결과 감염자가 늘면서 정권 지지율도 40%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다를까? 지난 대선에 부동산 문제가 큰 영향을 주었고,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이 흔히 거론되던 부동산 자체의 수요·공급보다는 현재 인플레이션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양적완화 때문이었고, 그런 완화가 팬데믹 상황에 대한 대처 때문이었다면, 이곳의 정권교체 또한 팬데믹의 자장 안에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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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한동안 봉쇄로 팬데믹에 맞서던 대만이 오미크론 침투와 더불어 정책을 바꾸고, 그 결과 감염자가 늘면서 정권 지지율도 40%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소신 있는 정책으로 감염병의 예봉을 피해 약한 매를 나중에 맞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코로나와 첫 만남의 충격이 큰 것일까. 남미에서는 콜롬비아에 200여년 만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는 등 전체적으로 “분홍 물결”이 넘실대고 있는데, 이 또한 기존 정권이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는 분석도 있는 듯하다.

우리는 다를까? 지난 대선에 부동산 문제가 큰 영향을 주었고,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이 흔히 거론되던 부동산 자체의 수요·공급보다는 현재 인플레이션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양적완화 때문이었고, 그런 완화가 팬데믹 상황에 대한 대처 때문이었다면, 이곳의 정권교체 또한 팬데믹의 자장 안에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이런 위력을 볼 때 황허의 치수가 정권을 좌우하던 고대로부터 우리는 도대체 몇걸음을 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창래의 <만조의 바다 위에서>(나동하 역)가 그리는 미래 사회 또한 우리가 고대의 사회구조로부터 몇걸음이나 나아갔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세계는 인구의 1% 정도만 거주하는 차터,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B-모어, 그리고 무정부상태의 자치주 등 세 구역으로 나뉘고, 이 구역들을 가르는 높은 담이 세워져 있다.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게 된 것은 발병 원인도 완전한 치료법도 알 수 없는 C-질환이라는 병 때문이다. 이 세 구역 거주민을 나누는 것은 이 질환에 걸렸을 때 큰돈을 내고 어느 정도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얼핏 현재의 팬데믹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이 소설은 2014년에 나왔으며, 사실 나는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소설에서 사회구조가 그렇게 고착된 원인을 인간의 문제가 아닌 C-질환에서 찾는 것이 뜬금없고 안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팬데믹을 조금은 알게 된 지금, 안이한 것은 나였다고, C-질환이 곧 인간의 문제일 수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깨끗한 건물에 현혹되어 배관과 하수 처리는 살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사회가 상당 부분 환경에서 독립해 굴러간다고 착각해 상상력, 아니 상식의 빈곤을 드러냈던 셈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아예 문명의 하수를 직접 처리하는 방식을 상상해볼 수는 없을까. 가령 정치가들이 거창한 이름을 버리고 위생당이나 방역당을 만들면 어떨까. 농담처럼 들리는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무한한 농담>에는 ‘깨끗한 미국’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하는 연예인 출신 정치가 조니 젠틀이 등장한다. 20세기 말 소련이 해체된 직후 나온 이 소설에서 젠틀은 정치가의 필수품인 공공의 적을 새로 찾다가, 바이러스에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불결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에 주목해, 결국 미국 북동부 몇개 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 전체를 쓰레기 매립지로 만들고 미국 나머지는 깨끗하게 유지하겠다는 공약으로 기존 정치에 얽매인 거대 양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 공약은 실행에 옮겨질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정치적 지형까지 바뀌면서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가 한 나라로 합쳐진다.

물론 이것은 월리스의 농담이고 패러디지만 마냥 웃어넘기기는 어렵다. 농담이 나오고 25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자연의 공세에 휘둘리면서도 자연을 진지하게 존중해야 할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연을 끌어안을 만큼 비전의 폭을 넓히지 않는다면, 그 정치는 젠틀만큼의 상상력도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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