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애처가' 윤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하는 것
[아침햇발]
최혜정 | 논설위원
올해 초 논란을 빚은 김건희 여사의 ‘7시간 녹취록’ 가운데, 나를 포함한 주변 기혼 여성들이 ‘꽂혔던’ 대목이 있다. “난 (밥은) 아예 안 하고 우리 남편이 다 하지.” (부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요리의 고수만 쓴다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위에서 뒤집개와 밥주걱으로 계란말이 각을 잡을 때 짐작은 했다. 그는 정치 참여 선언 뒤 개설한 에스엔에스 공식 계정에 자신을 “애처가”라고 적었다.
매사 거침없는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는 ‘아내 사랑’인 것 같다. 그는 대선 기간 김 여사의 허위이력 기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문제없다는 투로 시간을 끌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처음으로 수세적인 모습을 보인 것 역시 김 여사 사안이었다. 그는 김 여사의 봉하마을 동행인 논란에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모르겠다)” “좋은 방안 있으면 알려주십시오”라며 ‘과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노출했다. 대선 때나 취임 이후나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에는 김 여사가 있다. ‘김건희 리스크’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지금, 윤 대통령은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나. 아니 할 수 있나.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윤 대통령 취임 뒤 활발한 대외 활동을 개시했다. 애초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는지 모른다. 대통령 배우자는 민간인이지만,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곁에서 ‘잉여권력’을 행사한다. 국내외 주요 행사에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때로는 대통령을 대신한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통령 배우자의 모든 행보는 공식적이다. 공개와 비공개만 있을 뿐이다. 김 여사는 오는 29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 부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국민에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김 여사의 광폭 행보 주변에는 ‘비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지난달 말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동선, 1급 보안구역인 대통령 집무실 내의 사진이 개인 팬클럽이라는 사적인 경로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유출됐다. 한바탕 논란을 빚은 뒤에도 윤 대통령 부부의 영화 관람 미공개 사진이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추가로 공개됐다. 경고 조처가 없었다는 얘기다. 김 여사가 봉하마을 방문 때 대동한 ‘10년지기’ 김아무개 교수는, 김 여사가 5월 단양 구인사를 방문할 때도 곁에 있었다. 그는 윤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생활문화예술지원본부장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선 사회복지문화분과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김 여사의 사적 인연이 공적 영역으로 침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묵인 또는 방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 여사의 친오빠는 캠프 활동에 이어 윤 대통령 당선 뒤에는 친분 있는 기자들에게 김 여사의 옷·가방 정보, 사진 등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직원 2명은 대통령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이른바 ‘관저팀’에서 김 여사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관련 직무 경험이 없는 인사를 개인적 인연으로 채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뿐더러 필연적으로 ‘비선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누가 봐도 김 여사의 측근인 이들을 대통령실 그 누가 통제할 수 있나.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의 기저에는 그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배우자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 부활 의견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 조직이 대통령 배우자와 측근들의 국정 개입을 막는 칸막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배우자 곁에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현재 대통령실에는 배우자를 포함한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감찰하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출범 두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써부터 김 여사의 인사 개입 소문이 돌고, 친구와 가족 ‘비선’ 논란이 벌어진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결단이 남아 있다. 대통령 배우자는 사인의 아내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인이다. 김 여사의 공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2부속실 또는 그에 준하는 다른 조직으로 김 여사를 보좌하며 동시에 제어하도록 해야 한다. ‘애처가’ 윤 대통령이 진정 아내를 위하는 길은 김 여사를 감싸고 있는 인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시스템을 두는 일이 될 것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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