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적인 슬픔

한겨레 2022. 6. 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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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공중화장실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입니다.

절체절명의 다급한 심정으로 화장실에 뛰어든 순간, 마침 깨끗이 비어 있는 한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입니다.

그제야 세상사에 관심이 생긴 여유로운 자는 옆 칸에 입주한 또 다른 사람, 그가 내는 이상한 소리가 신경 쓰입니다.

서울시립승화원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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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서울시립승화원 외딴 기슭에 자라난 씀바귀. 마음이 맑은 날 귀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 흘리는 눈물도, 함께 나누는 슬픔도. 사진 김완

[삶의 창] 김완 | 작가·특수청소노동자

어떤 날은 공중화장실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입니다. 절체절명의 다급한 심정으로 화장실에 뛰어든 순간, 마침 깨끗이 비어 있는 한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입니다. 세계 평화와 인류의 희망은 유엔 안보리의 반짝이는 원형 테이블이 아니라 아래쪽에 깨끗한 물이 담긴 흰색 도자기 좌석에 앉으며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저마다 집에 그런 기특한 의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요? 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너그러운 존재.

어느 날 발인 일정을 앞두고 배를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장례식장 화장실에 뛰어들어간 저는 가장 안쪽 칸에 무사히 입주합니다. 평화의 비둘기 한마리가 ‘푸드덕’ 하고 날아오르는 소리, 무언가가 압제에서 해방되었다는 아랫녘 소식을 듣고서 비로소 마음이 놓입니다. 그제야 세상사에 관심이 생긴 여유로운 자는 옆 칸에 입주한 또 다른 사람, 그가 내는 이상한 소리가 신경 쓰입니다.

서울시립승화원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습니다. 얄팍한 큐비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 칸에 앉은 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평안에 이르는 동안 옆 칸에 앉은 사람은 흐느끼며 고통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협소한 세계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손을 맞잡지 못하고 칸칸이 나뉘게 마련인가 봅니다. 볼일 있는 자들만 들어왔다가 서둘러 떠나는 화장실에 누군가 오래 머물며 우는 것은 좀처럼 볼 일 없는 광경일 테지요. 게다가 이곳은 거대한 화장시설까지 갖춘 시립장례식장 아닌가요. 통곡이 공식적으로 허락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눈물 젖은 손수건이 지당하고 빈소에 엎드려 가슴을 치는 자가 낯설지 않은 곳. 배우자가 죽으면 장례식장 변소에 숨어서 몰래 웃는다는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가 세속을 떠돈다지만, 구태여 이 좁은 곳에 들어와 나가지도 못하고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인간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나누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애도 방식도 가지가지. 봉투에 정성껏 이름을 써서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두 손으로 꽃을 받들어 제단에 바칩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끼리 서로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맞절을 올리고, 상주는 새 손을 모시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문상객들에게 술을 따르며 나눠 마십니다.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급작스러운 부탁에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는 것도 예사로운 풍경. 가까운 친구라면 발인식에 자청하며 관을 옮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을 나누면서 돈독히 정을 쌓아간다고 믿는 민족입니다. 언젠가 이 모든 형식과 절차가 변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애도의 가장 깊은 뿌리에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장례식장 화장실 옆 칸에서 우는 남자. 어쩌면 당신은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인가요? 영전까지는 차마 발을 들이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하는 절박한 사연이 있나요?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빈소에서 통곡이 멎지 않아서 화장실에 피신하여 마저 우는 다정하고 보드라운 사람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용변도 참지 못하면서 슬픔마저도 참을 수 없는 일관된 뜨거움을 가진 사람인가요?

화장실 안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여기 폐회로티브이가 있다면 특례법에 저촉되며 죗값이 무겁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곳에서 흘리는 당신의 눈물은 비공식적입니다. 지금 당신이 은닉하는 슬픔과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여기밖에 울 곳이 없다면 여기에서라도 마음 편히 울다 가세요.

우리를 가로막은 벽이 모두 사라지고 손을 맞잡고 눈물과 행복을 나누는 순간, 장례식장 화장실 변기에 앉아 그런 날이 오길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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