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국기문란"..'대통령 패싱' 판 키우는 윤 대통령, 왜?

박수지 2022. 6.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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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인사청문회]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사상 초유 사태에
대통령실·여권 실세 개입 가능성 차단한 채
"대통령 재가 없이 경찰 자체로 인사 보직"
불과 보름 전 치안정감 인사 때도 재가 전 발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경찰 치안감 인사가 2시간 만에 번복된 사태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경찰을 질타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인사 번복 과정을 복기하면 대통령실 내부나 국민의힘 등 여권 실세 개입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인데, 경찰에 의한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논란을 정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측근인 행정안전부 장관을 통해 법무부 검찰국과 유사한 경찰국을 신설하려는 자신의 뜻에 반발하는 것에 대한 군기잡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3일 아침 윤 대통령이 작심하고 발언한 강도 높은 경찰 비판에 경찰 내부는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은 인사가 유출됐다” “경찰에서 행안부로 자체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을 해버린 것”이라며 임명권자인 자신을 무시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 패싱’ 발언과 달리, 불과 보름 전 이뤄진 치안정감 보직 인사 때도 경찰청 내정 발표(8일)→대통령 재가(9일) 순서로 진행됐다. 김창룡 청장 역시 이날 오전 진상 파악을 위해 경찰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경찰청이 올린 인사안과 다른 안으로 1차 안이 내려왔다”고 설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 발언을 경찰청장이 반박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 청장을 만나고 나온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경찰청이 올린 인사안과 다른 안으로 (행안부에서) 1차 안이 내려왔고 이후에 또 한번 수정됐다. 1차로 내려온 안은 행안부와 분명히 얘기된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2시간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 또는 대통령실에서 인사안이 수정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시간 만에 보직이 바뀐 7명 중 김학관 경찰청 기획조정관이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으로 밀려난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 근무 때문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상식적으로 경찰이 대통령을 패싱하고 자체적으로 인사를 발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다. 이임 인사도 못 하게 급박한 인사를 내고, 이를 2시간여 만에 뒤집는 일련의 과정은 경찰국 신설 등에 반발하는 경찰 조직에 앞으로 5년간  ‘복무지침’을 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행정 착오로 정리될 수도 있는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경찰의 국기문란’으로 파장을 키우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 경찰 간부는 “(대통령이) 밤 10시에 인사를 결재했으면서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부임하라고 한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느냐. 경찰 조직이 아무 소리 내지 말라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21대 국회 상반기 행정안전위원장을 맡았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반기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전 윤석열 정부의 경찰통제 규탄과 경찰의 중립성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항의방문, 김창룡 경찰청장 등 지휘부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경찰 통제안으로 여겨지는 경찰국 신설에 대해 “검사 조직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 경찰 관련 업무를 맡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했으니 “당연히 치안이나 경찰사무를 맡는 행안부가 지휘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두 조직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역사적 맥락과 법 규정, 조직 구성 등이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정부조직법상 치안·경찰사무는 행안부가 맡고 있지 않다. 군사정권 시절 위세를 떨쳤던 내무부(현 행안부) 치안본부가 민주화 이후 법 개정으로 폐지됐기 때문이다. 반면 법무부는 1948년 정부조직법 제정 당시부터 법무부 장관이 검찰사무를 관장하도록 일관되게 규정하고 있다. 검사가 법관에 준하는 강력한 신분보장을 받고 있고, 수사·기소권을 갖는 만큼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 장관에 의한 문민통제를 열어둔 것이다. 장관부터 주요 보직을 전·현직 검사들이 맡는 법무부를 일반 공무원이 대부분인 행안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주요 기준을 ‘검찰’에 두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한계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기관의 권한은 법률로 정해야 하고 법률에 명문된 의미를 벗어나는 건 소극적으로 해야 한다. 치안에 관한 권한을 경찰청에 부여했는데, 행안부 장관이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대통령실 ‘컨펌’ 안 했다?…‘치안감 인사번복’ 경찰이 총대 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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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초유의 치안감 인사 번복…“행안부, 최종본 아니라며 다시 보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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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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