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거장"..박해일, '헤어질 결심' 앞두고 봉준호에 문자 보낸 사연(종합)[Oh!쎈 인터뷰]

김보라 2022. 6. 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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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보라 기자] “‘사랑한다’는 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건 물론 어른들도 할 수 있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표현에 따르자면, 에둘러 (사랑의) 느낌을 떠올리게 하면서 어른스러운 태도로 ‘사랑한다’고 말한 게 아닌가 싶다.”

박해일은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 감독이 멜로 ‘헤어질 결심’을 통해 보여준 농익은 남녀의 애정 표현방식에 대해 “예를 들면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 (애정과 배려가 섞인 마음으로) 상대방이 먼저 주문하게 하는 작은 것에서부터 쉽고 담백하게 (사랑)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박 감독이 전작들과 다르게 표현한 로맨스에서 보여준 사랑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박해일은 이어 “(직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사랑하는 감정이)누적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두 사람이 만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직접적으로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표현 방식이 저희 영화가 말한 사랑인 거 같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영화 ‘헤어질 결심’(배급 CJ ENM, 제작 모호필름)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수사 멜로물. ‘소울 메이트’로서 오랜시간 함께 해온 정서경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박해일은 앞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 ‘살인의 추억’(2003)에도 출연했던 바.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한국의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두 번이나 경험한 셈이다.

“저라는 배우가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적이 없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유력한 용의자 역할이었다. 그 이미지로 저를 대하시더라. 조심스럽게.(웃음) 이번엔 형사고, 그것도 친절하고 청결한 형사 역을 맡았다고 하니 그때 좀 놀라더라. 수사물에서 보자면 반대의 역할이니까. 상영 후에는 칭찬을 해주셨다. 박찬욱 감독님 스타일의 영화 안에서 저라는 배우가 잘한 거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처음 간 칸영화제였지만 좋은 얘기를 들어서 선물 같은 작품이다.”

이에 박해일은 “저는 좋은 감독님이 갖고 있는 작업 스타일이 어디에 가서도 잘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봉 감독님과의 작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두 분이 영화적 동료이자 서로를 존중해주는 관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봉 감독님에 이어 박 감독님의 작품에 들어가면서, 사전에 박 감독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면 대처하는 게 유연해지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헤어질 결심’의 첫 촬영날이었는데 그날이 낮 촬영이었다. 제가 긴장도 했고 첫 촬영이라 일찍 나갔다. 현장 공기도 느껴보고 싶어서.(웃음) 긴장이 되어서인지 첫 단추를 어떻게 끼어야 할지 곤혹스럽더라”고 떠올리며 “그래서 봉 감독님한테 문자를 남겨 물어보자 싶었다. 제가 박 감독님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고민했던 거다. ‘제가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팁 좀 달라’고 봉 감독님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랬더니 담백하게 ‘진정한 마스터시지’. ‘진정한 거장이시지. 네가 어떤 연기를 하든 다 받아주실 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답장을 해주셨다”는 일화를 흥미있게 전했다.

두 거장 감독의 스타일을 비교해 달라는 물음에는 “제가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보자면 봉준호 감독님은 사회적인 사건에서 (작품을) 출발하시는 거 같다. 사회적 시선을 놓지 않고 그 안에서 어떤 드라마가 생성이 된다고 본다. 언어와 유머를 통해서 연출의 변을 꼭 짚어내는 스타일 같다”는 사견을 전했다.

이어 박해일은 “박찬욱 감독님은 이야기 안에서 보이지 않게 철학적인 질문을 가장 대중적으로 던지는 방식을 쓰시는 감독님이 아닐까 싶다”면서 “제가 생각한 것들로 두 감독님의 스타일을 정확히 살펴보긴 어렵다. 같은 종류의 스타일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다른 스타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교했다.

박해일은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 영화는 작년 3월에 촬영을 마쳤고 약 1년 동안 개봉을 기다려왔다. 사실 제가 (코로나 이전) 꾸준히 1년에 한두 편씩은 해왔는데, 이 영화를 마친 이후는 휴식기를 갖게 됐다. 1년 동안 쉬면서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려왔다”고 이달 29일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그는 1년간 휴식기를 가진 이유에 대해 “제가 찍어놓은 작품들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은 상황에서, 팬데믹 기간에 새롭게 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찍어놓은 작품들의 후반 작업에 참여했다”며 “제가 예상하기론 팬데믹 이후 제가 찍어놓은 작품들이 어떤 순서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기다렸다는 듯이 물밀듯 관객들을 만날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박해일은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지만) 한 작품씩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라 이제야 제 일을 하는 느낌이다. 이 영화가 가장 마지막에 찍었는데 저의 시작점이 됐다. 관객과의 만남이 설렌다”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에 대해 그는 “촬영장에서의 모습과 사석에서의 모습에 있어서 간극이 크지 않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님과 일을 할 때 부담이 크진 않았다. 감독님을 보며 해준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참고했다. 다른 배우들도 그렇겠지만, 저 또한 감독님을 관찰하는 배우에 속한다. 그분에게서 보이는 좋은 모습들을 장해준 캐릭터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 감독님이 영화 ‘덕혜옹주’에서 제가 맡은 김장한의 모습이 장해준에게도 일부 쓰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물론 해준스럽게 바뀌어야 했지만. 장르물 속 형사 모습과 달리 어른스럽게, 예의있게, 청결하게, 정결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박찬욱의 작품 속 형사를 분석하고 표현한 과정을 설명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을 해준에게 그대로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해준에게 가깝나요?’라고 감독님에게 질문하며 배우로서 해낼 수 있는 수준에서 감독님과 잡아나갔다.”

이어 “감독님의 필모를 보면 스타일이 강하지 않나. 이번에도 해준의 의상만 살펴보자면 상의는 슈트인데 신발은 운동화를 신는다든지, 상의에 주머니가 많아서 ‘어쩌면 준비된 사람이지 않을까?’ 예상해봤다. 그렇게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얘기하면서, 시나리오를 알아가면서, 차곡차곡 준비했다. 감독님이 탄탄하게 준비하시는 편이라 쉽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좀 더 명확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이 영화는 올해 열린 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개봉에 앞서 해외 관객과 평단을 먼저 만났다. 박찬욱 감독은 전작 ‘박쥐’(심사위원상, 2009) 이후 13년 만에 칸영화제 본상 수상(감독상)의 기쁨을 누렸다.

박해일은 “해준의 엇갈리고 답답한 마음을 그의 방식대로 보여주려는 연기가 숙제였다. 박 감독님이 관객에게 잘 설명해주고 싶은대로. 감독님식 감정톤으로 표현해야 했다”며 “감독님이 원하는 톤과 제가 표현할 수 있는 톤으로 화학작용을 내 해준을 잘 소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purplish@osen.co.kr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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