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확대·독자경제권 구축'..브릭스로 서방의 포위망 뚫으려는 중·러

이종섭 기자 2022. 6. 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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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열린 브릭스 국가 비즈니스포럼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쳐

중국과 러시아가 5개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의 포위망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다자 협력 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기존 회원국 외에 다른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브릭스에 끌어들여 외연을 확장하려 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회원국간 독자적인 경제권과 국제결제시스템 구축을 제안하고 나섰다.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를 각각의 축으로 하는 진영 대결과 신냉전 구도가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23일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브릭스 정상들이 서방의 “이기적 행동”에 맞서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화상 연설을 통해 “우리는 정직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의 기반 위에서만 일부 국가들의 잘못 구상되고 이기적인 행동의 결과로 빚어진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 탓으로 돌리며 브릭스 국가들의 단결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이어 “(서방 국가들은) 금융 메커니즘을 이용해 미시경제 정책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전 세계에 전가하고 있다”면서 “각 정부들간의 진정으로 다극적인 시스템을 구성하는 단합되고 긍정적인 경로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브릭스 국가들의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또 브릭스 국가들은 “독립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지원에 의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의 전날 열린 브릭스 국가 비즈니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서방은 시장 경제와 자유 무역,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에 대한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동시에 정치적 목적을 띤 제재를 끊임없이 도입하며 경쟁국에 압력을 행사하는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대러 제재를 가한 서방국가들을 정면 겨냥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 서방의 금융 제재에 대항한 브릭스 회원국 간 국제결제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의 ‘금융정보전달시스템’은 브릭스 회원국 은행과 연동될 수 있고, (러시아 최대 결제시스템인) ‘미르’는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브릭스 통화에 기반한 국제적 기축통화 창설 가능성도 타진 중”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에서 퇴출된 러시아는 국책은행을 통해 스위프트를 대체할 국제결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를 브릭스 회원국간 결제망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브릭스가 “세계 인구 30억명,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 세계 무역의 20%, 세계 외환보유고의 35%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회원국간 협력과 단결을 통해 서방에 맞설 자체적인 경제권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있는 중국 등 다른 브릭스 회원국들을 뒷배 삼아 서방의 제재망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역시 러시아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며 브릭스를 대미 견제에 활용하려는 모습이다. 23일 정상회의를 주재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우리는 냉전적 사고와 집단 대결을 지양하고 독자 제재와 제재 남용에 반대하며 인류 운명공동체의 ‘대가족’으로 패권주의의 ‘소그룹’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경제 회복을 위해 힘을 결집하고 거시정책 조정을 강화하며,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되고 원활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브릭스 국가 간 교류 심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전날 포럼 연설에서 “제재는 부메랑이자 양날의 검이라는 점이 다시 입증됐다”며 러시아의 입장을 적극 두둔했다. 그는 “세계 경제를 정치화, 도구화, 무기화하고 국제 금융·화폐 시스템의 주도적 지위를 이용하는 자의적 제재는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재앙을 초래한다”면서 “일부 국가는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망 단절을 실행하려 하는데 경제의 세계화라는 역사의 흐름에 역행해 남의 길을 막아서려 하면 최종적으로는 자기의 길을 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 정상회의와 24일 ‘글로벌발전 고위급 대담회’에서도 ‘찰떡 공조’를 과시하며 회원국과 여타 개발도상국들을 반서방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브릭스 의장국인 중국은 이번 회의를 브릭스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로 삼고 있다. 24일 글로벌발전 고위급 대담회에는 브릭스 회원국 외에 다른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정상들도 참여한다. 브릭스 확대를 제안하며 중국이 내놓은 ‘브릭스 플러스(+)’ 구상을 본격화하는 수순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브릭스 플러스의 틀 안에서 주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전 세계적인 도전과 위기에 대해 공동 입장을 표명하고 올바른 회복 방향을 찾기 위해 단결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브릭스를 대미 견제에 활용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계획에는 미국 주도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에 참여하고 있는 인도가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인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갈등 관계에 있는 중국 주도로 브릭스가 확대되는 것은 원치 않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인도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공동 성명이 중립을 지키도록 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정상회의를 이용해 미국과 동맹국에 선전적 승리를 거두려는 시도를 막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인도는 새로운 회원국을 추가하는 기준을 정하도록 압박함으로써 브릭스를 확대하려는 중국의 노력도 지연시킬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과 유럽도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주요 의제로 하는 연쇄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 EU는 23~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연다. 정상회의 공동성명 초안에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EU 가입을 위한 후보국 지위를 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도 오는 26~28일 독일에서 정상회의를 연다. AP통신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돕기 위한 ‘우크라이나 마셜플랜’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12년만에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할 예정이다. 전략개념은 동맹이 직면한 안보 문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나토의 정치·군사적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나토가 이번 새 전략개념에서 러시아를 이전의 ‘잠재적인 전략적 파트너’가 아닌 ‘전략적 적’으로 간주하고, 중국은 ‘잠재적 위협’으로 다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상회의에서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문제도 논의될 예정이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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