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두창, 대유행 가능성 낮지만 '조용한 전파' 우려
원숭이두창이 코로나19 같은 대유행으로 확산되진 않겠지만 새로운 증상발현 양상이나 잠복기 등을 고려할 때 ‘조용한 전파’가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3세대 백신과 치료제를 조기 도입하고 방역조치는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프리카 풍토병일 때 원숭이두창의 일반적인 증상은 초기에 발열, 두통, 근육통 림프절병증 등의 증상을 보이고 1~3일 후에 얼굴이나 입에서 발진이 시작돼 손, 발로 퍼지는 것이었다.
최근 유럽·미국 등에서는 다른 양태의 증상발현이 보고됐다. 지난 14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를 보면, 미국 확진자들 중에는 생식기나 항문 주위에서 발진이 먼저 나타나기도 했으며 얼굴·손·발 이외의 신체 국소부위에서 발진이 나타났다. 독감 증상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항문·직장 통증, 직장 출혈, 장염 또는 대변이 마려운 느낌도 원숭이두창 증상으로 파악됐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명예교수는 “유럽·미주 확진자들에서 발열, 두통 없이 바로 발진이 나타나는데, 아프리카 풍토병일 때와 다르긴 하다”며 “원숭이두창은 DNA(디오시리보핵산) 바이러스라서 변이가 많이 일어나진 않는다. 다만 변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어 관심있게 보고는 있다”고 했다.
원숭이두창은 잠복기가 최장 21일에 달한다. 증상이 발진부터 시작하고, 특히 잘 안 보이는 신체 국소부위부터 나타나면 감염자 스스로도 인지가 어려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검역 단계에서 완벽하게 걸러낼 순 없다고 본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속적으로 해외유입이 일어나고 국내 2차, 3차 전파 사례도 발견될 것”으로 예상했다.
방역당국은 23일 “향후 지역사회에서 감염된 환자가 나올 수도 있으나 비말 등이 주된 감염경로인 코로나19와는 달리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파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했다. 이어 “다만 잠복기 중에 입국하거나 검역단계에서는 증상을 인지 못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국내에 입국한 의심환자를 놓치지 않고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역사회 내 ‘조용한 전파’가 우려되는 것은 취약계층 때문이다. 백순영 교수는 “현재는 20대에서 50대 이전 남성들이 많이 감염되는데, 어린 아이들이나 면역저하자들이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다”며 “확진자 초기 백신 접종을 통해 지역사회에 확산되는 걸 막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방역당국은 3세대 두창 백신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백신은 덴마크 제약사 ‘바바리안 노르딕’이 만든 ‘진네오스’를 가리킨다. CDC에 따르면, 진네오스는 원숭이두창에도 85% 예방 효과를 보였다. 이 백신은 28일 간격으로 두 번 맞으면 된다. 정부는 3세대 백신 도입 전엔 2세대 백신을 확진자·밀접접촉자 중 희망자에 한해 접종하기로 했다. 백순영 교수는 “2세대 백신은 접종에 까다롭고 생백신이라 면역이 약한 어린 아이들에겐 적합하지 않다”며 “3세대 백신은 수 천회분만 있어도 통제가 가능해진다. 3세대 백신 도입이 늦은 건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했다.
원숭이두창 치료용 항바이러스제 ‘테코비리마트’ 500명분은 다음달 도입 예정이다. 그외 중증화에 대비해 시도포비어, 백시니아면역글로불린 등도 사용할 예정이지만, 100명분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 원숭이두창 발병 사례가 급증하지는 않기 때문에 물량 자체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집계를 보면 지난 22일 기준 52개국에서 3127명이 원숭이두창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원숭이두창과 관련해 ‘과소 집계’ 우려가 제기되자 그동안 공공보건시설에서만 하던 진단검사를 다음달부터 민간 의료시설에서도 가능하도록 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20일 유럽 등 외국을 여행하지 않은 주민이 원숭이두창 확진 판정을 받아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3일(현지시간) 긴급 회의를 열고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포 여부를 논의한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는 몇 년 만에 세계적으로 퍼진 것이라면 원숭이두창은 서서히 퍼질 가능성은 충분이 있다”며 “코로나19처럼 대응하기에는 위험도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무시할 수 있는 위협도 아니다”고 했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질병 특성을 고려하면 원숭이두창을 코로나19와 같은 수준으로 방어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다”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때문에 진단받는 것을 꺼려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