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증산하라" 바이든 압박에도 美 셰일업계가 꿈쩍않는 이유

신수지 기자 2022. 6. 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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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Market Data
조 바이든 대통령이 22일 백악관에서 유가 관련 회견을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유류세를 3개월간 면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업체들을 향해서도 거듭 증산을 촉구했다. /로이터연합

“석유 회사가 왜 시추를 하지 않을까요? 생산을 하지 않아야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심하고 석유 회사들을 비판했다.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갤런(약 3.8L)당 5달러(약 6450원)를 넘어서면서 가뜩이나 높은 물가를 자극하고 있지만, 셰일 기업들은 여전히 증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1160만배럴로,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전 생산량인 1300만배럴에 크게 못 미친다. 셰일 기업은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의 3분의 2 이상을 담당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업계가 자사주 매입에만 열중하고, 새로운 투자는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셰일 업계가 증산을 주저하는 데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셰일 혁명’ 이후 경험한 악몽 때문이다. 미국 셰일 업계는 지난 10년간 새로운 시추 기술 개발로 채굴 비용이 낮아지자 경쟁적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그러나 과도한 공급으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셰일 기업들은 2010~2019년 약 1조1000억달러(약 1418조원)를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3000억달러(약 387조원) 손실을 봤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겹쳐 원유 수요가 크게 줄고 유가가 폭락하자 셰일 기업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살아남은 업체들은 생산과 투자 증대를 통한 성장에 집중했던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안정적 현금 흐름과 고배당, 건전한 재무 구조를 유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리서치 업체 리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현재의 국제 유가가 유지될 경우 미국 셰일 회사들은 올해 약 1800억달러(약 232조원)의 잉여 현금 흐름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S&P 글로벌의 라울 르블랑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올해 셰일 사업자들이 창출한 현금 규모는 지난 20년간 벌어들인 총액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 셰일 기업 잉여 현금 흐름

셰일 기업들은 넘치는 현금으로 증산을 위한 투자를 하는 대신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미국의 대표 셰일 기업 9곳이 배당 및 자사주 매입에 지출한 금액은 94억달러(약 12조1260억원)로, 신규 시추 프로젝트에 투입한 금액보다 54% 많았다. 셰일 혁명을 주도한 기업인 체사피크에너지의 닉 델로소 CEO(최고경영자)는 “과거에는 원유 생산 극대화에 집중했으나, 현재는 주주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을 배분하고 있다”고 했다. 체사피크는 향후 5년간 총 70억달러의 주주 배당을 약속했는데, 이는 현재 체사피크 시가총액(119억달러)의 59%에 달한다. 이런 주주 친화 정책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셰일 업계는 생산량에 초점을 맞췄던 임원 보수 산정 방식도 바꿨다. 컨설팅 회사 머리디언 컴펜세이션 파트너스에 따르면 2018년에는 대형 셰일 기업의 89%가 임원 인센티브와 생산량을 연계했으나, 지난해에는 그 비율이 50% 미만으로 줄었다. 연간 현금 보너스에서 생산량에 부여되는 가중치도 24%에서 11%로 줄였다. 대신 현금 흐름 목표, 자본 수익률 지표, 환경 목표 등에 부여되는 가중치를 크게 높였다. 셰일 기업 레인지 리소시스는 2020년부터 생산량을 인센티브 공식에서 제외하고, 비용 절감과 수익성 목표 달성 여부로 대체했다. 비키 홀럽 옥시덴털 퍼트롤리엄 CEO가 지난해 지급받은 연간 인센티브 240만달러(약 31억원) 가운데 대부분은 배럴당 생산 비용을 18.7달러 이하로 유지한 성과에 기반했다.

미국 셰일 업계가 고(高)유가에도 선뜻 증산에 나서지 않는 배경에는 공급망 혼란과 고용난에 따른 비용 인플레이션도 있다. 코테라에너지에 따르면 설비 및 인력 부족, 경유와 시추용 모래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셰일오일 시추·생산 비용이 전년보다 20% 올랐다. 또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해 유정용 강관과 시추 설비, 압축기 등을 주문해서 납품받기까지 걸리는 리드타임이 2년으로 길어졌다. 파이어니어 네이처 리소시스는 내년에는 신규 시추 설비 계약 비용이 최고 40%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홀럽 옥시덴털 CEO는 “장기 프로젝트 중 일부는 높은 비용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생산을 가속하는 것은 사실상 ‘가치 파괴’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아무리 압박해도 셰일 업계가 당장 증산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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