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갈길 먼 발달장애인 자립..또다른 비극 막으려면
<출연 : 김예림 연합뉴스TV 사회부 기자>
올해도 발달장애인 가정에서의 비극적인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돌봄 부담을 오롯이 가족이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이상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저희 연합뉴스TV는 세 편에 걸쳐 발달장애인의 자립 지원 실태에 대해 전해드렸는데요.
사회부 김예림 기자와 함께 기사에서 다하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앵커]
김 기자, 먼저 어떻게 처음 취재를 시작하게 됐는지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저희 기사를 통해 전해드렸듯 이번 달 초 20대 발달장애인 형제를 키우던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형제는 24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는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울 또 다른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는데요.
이렇게 보호자 없이 홀로 남은 발달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들을 도울 제도는 없는건지 취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앵커]
형제가 홀로 남겨진 지 20일이 지났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기자]
안산시 장애인 가족지원센터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통해 형제를 돌보고 있는데요.
원래 형제가 이용 가능한 활동지원 시간은 매달 120~140시간 정도였는데, 시간이 추가돼 한 명당 매달 500시간씩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문제는 길어야 6개월까지만 추가 활동 지원 시간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결국 이들 형제도 나중에는 시설로 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장애인 부모 단체들은 형제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응석 / 안산시가족지원센터 센터장> "친구들이 시설이라는 데 있으면 아무래도 본인이 하고 싶은 욕구에 대한 그러한 것들이 많이 제재를 받잖아요.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앵커]
이번 사례도 그렇고,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잖아요.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기자]
장애계는 시설에선 장애인들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특성상 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과 식사 시간 등이 조직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개개인의 욕구를 반영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겁니다.
다만 탈시설에 대해선 장애인 부모들 사이에서 일부 의견이 갈립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이상, 다시 가족들에게 부양의 책임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앵커]
김 기자가 시설에서 나온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 봤잖아요.
시설에서 나오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다던가요?
[기자]
제가 만난 발달장애인 지원 씨는 9년 동안 대전의 한 시설에서 살았었는데요.
시설에선 할 일도, 자극도 없으니까 당시 지원 씨가 땅만 보고 걷다 보니 허리가 90도로 굽었었거든요.
또 무릎을 바닥에 대고 뱅글뱅글 도는 정형행동도 나타났고요.
그런데 지원 씨가 흡인성 폐렴에 걸려 잠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단 2주 만에 허리가 펴졌습니다.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었고요.
같이 손잡고 산책 다니며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구경한 것뿐인데, 그 자극에 허리가 펴진 거예요.
이후 시설에서 완전히 나온 지원 씨는 지금 2년째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지원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룸메이트와 같이 살고 있는데요.
활동 지원 서비스 시간 외에는 주거 코치들이 일대일로 지원 씨의 상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시설에서 정해진 시간에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던 지원 씨는 이제는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활동 지원사의 옷깃을 잡아끌면서 가장 좋아하는 일과인 산책을 가자고 하고요.
[앵커]
지원씨가 점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도 한시름 놓으셨을 것 같아요.
[기자]
저희 취재진과 인터뷰했을 당시 지원 씨 어머니께서 아들을 안 보신 지 한 달이 됐다고 하셨는데요.
시설에 보내지 않는 이상 예전 같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임현주 / 서지원 씨 부모> "지금은 어떤 시스템이든 간에 잘 지내고 있다는 확신이 들고 또 제가 언제든지 또 전화나 이런 걸 통해서 체크가 되기 때문에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좀 많이 해줘요."
떨어져 사는 아들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지만,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서도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하셨던 얘기가 10여 년 전 지원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아이가 졸업한 후에는 갈 데가 없으니까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잖아요.
지원 씨는 집에 혼자 잠깐 두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도 안됐거든요.
어머니 입장에서도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니까 당시에는 결국 아이를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기억에 남았던 게 아들을 시설에 보낼 때는 군대에 보내는 것 같았는데, 지원 주택에 보낼 때는 마치 장가보내는 것 같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앵커]
제도만 잘 갖춰져 있다면 발달장애인들도 가족의 품을 떠나 지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아직 갈 길은 멀다고요.
[기자]
제가 소개해 드린 지원 주택 제도는 서울시에서 처음 시작했는데요.
서울시는 2018년 '지원주택 공급과 운영에 대한 조례안'을 공포하고 지원주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지원주택 총 158호를 공급했고 이번 달 말까지 43호를 추가 공급될 예정이고요.
서울주택도시공사와 계약을 맺고 입주한 장애인들은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최대 20년까지 거주 가능합니다.
문제는 공급 부족입니다.
서울시에만 3만 명인 넘는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기 때문에 수요에 비해 주택 수가 한참 부족합니다.
아직까지 지원 주택 자체는 서울에 한정되어 있고 지방에서 사는 발달장애인들은 탈시설을 원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기도도 비슷하게 '지원주택 공급에 관한 조례'를 발표했는데요.
지원 주택을 공급한다는 내용만 있고, 장애인의 생활을 보조할 서비스에 대한 내용은 없어서 반쪽짜리 조례안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장애인 탈시설을 뒷받침할 제도 마련도 더딘데요.
2020년에 발의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은 아직도 수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앵커]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시죠.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주거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현재 발달장애인 경제 활동 상태는 열악한 상황이라고요.
[기자]
네, 지역사회의 선의나 일부 구청 차원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발달장애인 일자리는 공급 자체가 부족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30.1%, 고용률은 28%에 불과한 이유입니다.
저희 취재진들이 10여 명의 직원이 모두 발달장애인으로 이뤄진 용인시의 카페에 다녀와 봤는데요.
정규직으로 채용된 건 매니저 1명이고, 나머지 직원 중에선 이곳에서 훈련을 받아 다른 일반 카페에서 일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곳도 지역사회에서 힘을 모아 만들어진 일자린데요.
문제는 선의에만 기대서는 다수의 발달장애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문이 너무 좁다는 겁니다.
카페 인근의 용인시 수지복지관만 하더라고 이곳에서 운영하는 직업 훈련을 들어가는 것부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복지관에서도 공간과 예산의 한계가 있으니 관내 모든 발달장애인들을 수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고요.
[앵커]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인 가족들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지원 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현재 발달장애인 부모들에게 가장 간절한 사안은 '24시간 지원 체계' 마련입니다.
지난 4월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하루 앞두고 24시간 지원 체계를 요구하는 단체 삭발식도 있었죠.
저도 이 현장에 다녀왔었는데요.
당시 삭발식에 참여한 부모들의 결의문을 다 읽어봤었는데,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아이 곁에 없을 날에 혼자 남게 될 아이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는데요.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이를 위해 먼저 활동 지원 서비스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 발달장애인들이 한 달 동안 이용하는 활동 지원 서비스가 120시간 정도 되는데, 하루 4시간 정도 수준입니다.
장애계에선 적어도 활동 지원 서비스가 하루 평균 8시간은 되어야 하고, 중증일 경우 24시간 지원도 가능해야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합니다.
결국 이렇게 24시간 지원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돌봄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전가되게 됩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의 극단적 비극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우리 가족 구성원 중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기본적으로 국가가 우리 가정을 지원할 거라는 신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 신뢰는 앞서 말씀드린 24시간 지원 체계 보장, 일자리 마련 등 사회 보장 제도로 보여줘야 하는 거고요.
내 아이가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신뢰가 생기지 않는 이상, 발달장애인 가정의 극단적 비극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사회부 김예림 기자였습니다. (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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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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