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완경 바이블 들고 돌아온 '센 언니'.. "여성은 더 나은 대우받아야"

정지용 2022. 6. 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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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건터 '완경선언'
"모든 여성이 산부인과 전문의 돼야" 염원 담아
완경 증상부터 치료법까지 총망라
완경 외면하고  평가절하하는 시각에 반발
완경선언의 작가 제니퍼 건터 산부인과 전문의. 생각의 힘 Jason LeCras 제공

여성들의 수호자가 돌아왔다. 30년 경력 산부인과 전문의, 뉴욕타임스 여성건강 칼럼 고정필자, CBC 방송 진행자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침없는 산부인과 의사’인 제니퍼 건터가 ‘완경선언’을 품에 안고 나타났다. “모든 여성이 완경(폐경)에 관해 산부인과 전문의 정도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집착적으로 했다"는 저자는 오해와 침묵에 가려진 완경을 낱낱이 해부한다. 가히 완경에 대한 지식을 총망라한 바이블이라 할 만하다. '참으면 나아' ‘여성으로서 끝났네’ 등의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이들에게 강력 펀치를 날리는 페미니즘 입문서이기도 하다.

우선 생물학 강의부터. 완경은 난소에 더는 난포가 없어 배란을 할 수 없을 때 일어난다. 평균 시작 연령은 50~52세(한국은 49.7세). 난포에서 만드는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몸을 변화시킨다. 흔히 알려진 안면홍조 등의 발열감, 수면장애와 브레인포그, 심혈관 질환 등도 있을 수 있다.

완경은 의학지식이 차고 넘치던 저자도 당혹스럽게 한 경험이다. “나는 마지막 월경을 하고 8개월 후 유럽 일정을 위해 비행기를 탔다. 10시간 예정의 비행 중 5분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쾅. 나는 쏟아짐을 느꼈고 속옷은 피에 젖었다. 비행기 화장실에서 속옷을 갈아입고 기내에 비치된 싸구려 생리대를 10시간 동안 착용해 외음부 발진이 생긴 채로 휴가를 맞아야 했다”.

각종 연구 결과와 최신 의학 정보 등 팩트를 꾹꾹 눌러 담은 이유가 여기 있다. 여성이 완경기에 겪을 혼란과 두려움, 외로움을 무찌를 ‘지식’을 주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안면홍조 등의 발열감은 평균 7년 정도 지속된다. 약 25%의 여성은 발열감이 미미하거나 아예 없다. 25%는 길게(10~11년) 겪고, 나머지 50%는 그 사이다. 대부분 한 달에 열흘 정도 경험하는데, 약 6%는 매일 경험한다. 걱정될 만하지만, 증상이 아예 없거나 잠시 나타났다 없어질 수도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아는 것이 힘이다. 불쾌한 경험, 의사들의 위압적 태도, 사회적 외면으로 병원을 모른 척하면 고통은 자신의 몫이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중장년 남성이 가슴을 쥐어짜거나 심장마비를 겪으며 쓰러지지만, 완경 이후엔 여성의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미국에선 50세 이상 여성 51%가 저(低)골량이고, 15%가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는 수치도 기억해 두자. 저자는 발열감, 골다공증, 난소부전증 등에 효과적인 호르몬 치료도 적극 권하는 편이다.

완경선언ㆍ제니퍼 카터 지음ㆍ김희정, 안진희, 정승연, 염지선 옮김ㆍ윤정원 감수ㆍ생각의힘 발행ㆍ560쪽. 2만2,000원.

시끄럽게 떠들며 정보를 공유해도 부족할 판에 왜 은밀히 속삭이고 없는 듯 숨기나. ‘여성 몸은 원래 그래’ ‘아이 못 낳는 게 뭐 자랑이라고’ 등 남성들의 시선 때문. 저자는 “너무도 오랜 세월 가부장제가 완경을 컨트롤하며 우리의 침묵을 요구했다. 그 대가를 우리는 지금도 치르고 있다”고 분노한다.

지식 공백과 의료 무관심을 파고든 게 상업주의다. 제약회사들은 완경에 막연한 공포심을 가진 여성들에게 막대한 건강기능식품을 팔아먹는다. 막상 효능이 검증된 치료법과 약품은 시장에서 밀려난다.

책의 감수를 맡은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의사는 한국일보에 “의료에서 소외된 영역을 시장과 자본이 건강기능식품이나 자기계발 등으로 잠식하는 세태는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라며 “갱년기 증상에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골다공증이나 심혈관 질환 예방과 같은 이익은 없으므로 건강기능식품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실용적인 정보와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 “여성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대목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부모, 동반자, 형제, 자녀, 동료, 인류 절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은 남성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아직도 “왜 이렇게 예민해? 폐경기야?”라는 농담에 키득거린다면, 강제 처방도 고려할 만하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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