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초과 근무 가능' 추진한다
"연장근로 단위 '주→월' 관리 전환 검토"
연공성 임금체계도 직무·성과 중심 개편
고용노동부가 일주일에 초과 근무를 12시간 이상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관련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23일 밝혔다. 노동부는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시스템을 현대화한다는 취지이지만,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으로 1500시간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400시간 이상 많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브리핑을 열고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노동시간을 가령 노사 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등 합리적인 총량 관리단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일주일에 원칙적으로 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하면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일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노동부 발표대로 한 달 단위로 연장 노동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한 달에 48시간(4주 기준) 한도만 지키면 그 내에서 일주일에 12시간을 넘겨 초과 근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당초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 노동시간 48시간을 더해 일주일에 총 88시간까지 일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 장관은 “해외 주요국을 보더라도 우리의 ‘주 단위’ 초과 근로 관리방식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쉬어라’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 장관은 또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정산기간 평균 주 40시간을 유지하면서 노동자가 하루 노동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장관은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다른 분야는 정산기간이 1개월이지만 연구개발 분야에만 정산기간 3개월을 인정하고 있어 그 범위의 불명확성, 형평성 등의 문제가 있다”며 “근로자 편의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적정 정산시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밖에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같은 노동시간 제도 개편은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기업·업종별 경영 여건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탄력적인 노동시간 활용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주 52시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한다고 했다. 노동시간 제도 개편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서는 “근로자의 건강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건강보호 조치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했다.
임금체계는 현재의 연공 중심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 장관은 “연공성 임금체계는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나 저성장 시대, 이직이 잦은 노동시장에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성과와 연계되지 않은 보상시스템은 공정성을 둘러싼 기업 구성원간 갈등과 기업의 생산성 저하, 개인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했다. 풍부한 임금정보를 제공하는 ‘직무별 임금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개별 기업에 대한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을 확대하는 방안도 나왔다.
노동부는 더 상세한 과제 마련을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다음달부터 10월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연구회 논의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라며 “법령 개정 등 후속조치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노동계는 반발했고, 경영계는 환영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은 한국의 고질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 방향성에 공감하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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