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샷도 줄서는 맛집도 지겹다.. 구석구석 자세히 보는 '아싸 여행'

박경일 기자 2022. 6. 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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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경춘국도 종점 부근의 모습. 요즘이야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춘천으로 가는 메인 도로가 됐지만, 예전에는 강촌을 지나고 의암댐을 건너는 경춘국도가 유일한 길이었다.
위 사진부터 요선제면의 이보화(88·앞줄) 씨와 둘째 딸 김동심(54·왼쪽) 씨 그리고 사위 엄찬(55) 씨. 제일종합시장의 옷가게 ‘토탈패션’ 사장 최현숙(70) 씨. 함지 레스토랑 이광석(79) 사장이 레스토랑을 방문한 손흥민 선수와 찍은 기념사진.
위 사진부터 ‘독일제빵’의 옛날 빵. ‘함지 레스토랑’의 정식 메뉴. 뒷골목의 고깃집 ‘정선달’의 토시살 구이. 중앙로 지하상가의 ‘추억의 옛 다방’이 내놓는 쌍화차. 달걀노른자까지 넣은 쌍화차가 3000원이다.

■ 사소하지만 눈부신 삶을 찾아서… 춘천 한바퀴

남들 다 가는 ‘핫플’찾아 ‘인증샷’ 찍는 여행은 그만

과시의 욕망서 한발짝 물러서면 보이는 새로운 재미

기억과 추억이 묻어있는 중소도시, 춘천의 뒷골목서

묵묵하고 잔잔하게 버텨온 인생의 자취를 만난다

춘천=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여행은 이제 잘 나온 ‘인생 사진’ 한 장 남기는 일이 돼 버렸다. 여행의 증명은 근사한 배경에서 찍은 가장 잘생겨 보이는 사진이나, 길게 줄을 서 기어코 맛본 음식 인증사진이다. 다른 이들의 여행 사진을 뒤져 배경 주소를 전자지도에 찍고 따라가는 게 ‘잘하는 여행’이 됐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각도로, 똑같이 찍은 사진이 온라인에 그득한 이유다.

대체로 이런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여행 정보를 과점 생산한다. 그러니 여행 정보라고는 죄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나 ‘줄 서서 밥 먹는 맛집’ 혹은 축구장만 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 뿐이다. 한때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적도 있지만, 이제 그럴 가망이 없다는 걸 안다. 여행에 있어 사진은, 음식은 그리고 인정욕구는 더 집요해지고 더 강고해질 것이니까.

그래서 시작한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다른 방식의 여행’ 이야기다. 과시의 욕망에서 몇 발짝 뒤로 물러난 여행. 이른바 ‘인싸’들의 여행 반대쪽에 있으니, 굳이 이름 짓자면 ‘아싸(아웃사이더) 여행’이라고나 할까. 목적지는 낯선 중소도시가 될 듯하다. 대도시인 경우는 눈길 안 가는 곳이거나 한적한 변두리쯤이 되겠다. 이 여행에는 딱 하나 주어진 임무가 있다. ‘자세히 보기’다. 애정을 담고 자세히 보면 대단찮아 보이는 것들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모든 것은 오래 들여다보면 ‘입체적’으로 변한다.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건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다.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틈나는 대로 그런 여행을 말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아싸 여행 선언’이다.

1. 프롤로그…춘천행

‘아싸 여행’의 첫 목적지는 강원 춘천이다. 춘천을 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도시 크기가 여행에 딱 좋은 사이즈다. 도심에서는 어디든 다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춘천을 걸어서 여행하다 보면 도시 공간이 이루고 있는 맥락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이 단절되는 기억으로 남는 대도시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춘천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시간이 묻어 있어서’다. 중소도시에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다. 춘천에도 그런 곳이 많다. 춘천이 다른 중소도시와 다른 건, 그래도 뒤처지기 시작한 게 까마득하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것. 춘천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풍경과 정서가 지층처럼 남아 있다. 기억과 추억을 꺼내기에 적당한 간격이다. 춘천은 그 무렵의 청춘에게 ‘안개와 낭만의 도시’쯤으로 기억됐다. 춘천에 가 본 적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춘천에 가 보지 않았어도 관계없다. 그 시기를 관통해 살아왔다면 춘천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풍경을 봤을 테니까. 그러므로 춘천을 여행하는 건, 어떤 세대들에게는 곧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2. 춘천 골목에서 보게 되는 것들

춘천 여행에서 해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일은, 뒷골목을 기웃거리다가 별것 아닌 장소 앞에 문득 멈춰 서 거기 깃들어 있는 시간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디든 사는 건 다 같다’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사는 건 다 다르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와 춘천 같은 중소도시의 생활방식은 차이가 크다. 대도시 사람들에게 중소도시로의 여행이, 중소도시 사람들에게 대도시 여행이 흥미로운 이유다.

춘천 도심의 골목길을 기웃거리다가 느낀 게 있다. 중소도시에서의 장사란, 대도시에서 하는 장사와 여러모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가게 밖에 주인이 써 붙인 대자보 같은 안내문이었다.

요선동 먹자골목의 가게 ‘동대문곱창’은 작은 플래카드를 걸었다. 거기 적힌 글이 이렇다. “2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이젠, 한 달에 두 번 쉬려고 합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글의 용건은 ‘월 2회 휴무’지만, ‘쉰다’는 것보다 ‘2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데 눈길이 멈춘다. 세상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7년이라니….

생선구이 백반을 내는 ‘강릉집’은 가게 바깥에 화이트보드를 걸어 놓고 손님에게 띄우는 편지를 손글씨로 적었다.

“대대손손 내려온 500년 된 된장을 묻어 둔 장독도 없고, 노가리 머리에 파 뿌리에 한약재까지 넣어 보름 이상 우려 낸,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는 기가 막힌 육수도 없습니다. 아무 비결 없는 게 우리 집 비법입니다. 그냥 제가 새벽에 나와 따뜻한 밥 지어 놓고, 특별히 맛은 없어도 정성껏 국과 반찬을 준비하는 거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고는 그 뒤에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다짐까지 덧붙였다.

3. 미국행 휴가와 여자 씨름 대회

낙원동의 ‘삼성탕제원’ 진열장 창문에는 주인이 손글씨로 써 붙인 여름휴가 계획이 있다. 휴가 기간이 ‘6월 9일부터 7월 2일까지’라니 자그마치 23박 24일짜리 긴 휴가다. 휴가 목적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휴가 기간과 연락처 정도면 충분할 듯한데도, 굳이 외국으로 떠나는 휴가의 행선지까지 친절하게 적어 놓은 걸 보면, 외국으로 떠나는 긴 휴가를 손님들에게 슬며시 자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춘천중앙시장 옆에는 제일종합시장이 있다. 1984년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가 이내 경영난으로 ‘백화점식 시장’이 된 곳이다.

이 시장은 독립점포가 아니라 백화점처럼 넓은 홀의 공간을 나눠 쓰는 가게인데도 ‘토탈패션’ 매장에는 플래카드가 두 개나 걸려 있다. ‘전국 전통시장 상인장사 여자 씨름대회’와 ‘여자 팔씨름 전국대회 왕중왕전’ 수상을 자축하는 플래카드다. 두 대회를 석권한 이는 ‘토탈패션’ 주인 최현숙(70) 씨다. 씨름대회가 2014년에 열렸으니 그때도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는데도, 40대 초반 상대를 잇달아 꺾었다고 했다. 가게를 빙 둘러 표창장이며 감사패, 기념사진 등이 진열돼 있다.

집을 장식하듯 정성껏 꾸민 가게나, 식당 바깥에 주인이 써 붙여 놓은 글에서 느껴지는 건, 그들이 장사를 대하는 진심과 태도다. 이들에게 ‘생활’과 ‘장사’는 분리되지 않는다. 직업은 직업, 사생활은 사생활인 대도시에서의 생활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그럴까. 중소도시에는 한 가게를 성의를 다해 평생 지키고 있는 이들이 많다. 대를 잇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중소도시 골목 가게에서 보게 되는 건 이런 ‘진심’들이다. 춘천의 도심 골목 가게 구경이 재미있는 이유다.

4. 성탄절이 지겨웠던 빵집 며느리

춘천에는 가업으로 대를 잇는 노포(老鋪)가 하나둘이 아니다. 명동 지하상가 근처 중앙로의 ‘독일제빵’은 춘천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빵집이다.

1968년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54년째다. 그때 빵집은 죄다 유럽의 국가나 도시를 가게 이름으로 내걸었다. 로마제과, 스위스제과, 파리제과, 불란서제과….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지만, 모두 1980년대 춘천에 있었던 제과점이다.

독일제빵은 1999년 작고한 창업주 현영섭 씨의 대를 이어 며느리 장명희(62) 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독일제빵은 춘천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빵집이었는데도 가업을 잇기까지 장 씨의 고민이 적잖았다.

장 씨는 뜻밖에도 “젊어서는 빵집 일이 정말 지긋지긋했다”고 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장 씨가 시집올 무렵은 독일제빵의 전성기였다. 늘 손님이 줄을 서다시피 했으니 꼭두새벽부터 빵을 만드는 건 물론이었고, 요선동 먹자골목에서 회식을 한 직장인들이 부하직원 손에 빵을 들려 보내는 일이 잦아 밤늦게까지 빵집 문을 열었다. 바쁠 때는 며느리도 손을 보태야 했다.

장 씨는 가장 힘들었을 때가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고 했다. 주로 케이크에 꽃장식을 얹는 일을 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보름여 동안은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단다. 세밑에 캐럴만 들어도 마음이 들떴을 새색시에게는 마치 형벌처럼 느껴지는 노동이었으리라.

그런데 장 씨의 남편은, 빵집 일을 장 씨보다 더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단다. 아들이 아닌 며느리 장 씨가 독일제빵의 대를 잇게 된 이유다.

장 씨가 빵집을 이어받기로 했던 건 순전히 시아버지가 거의 평생을 다 바쳐서 일군 빵집을 하루아침에 닫을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들 당연한 듯 생각했지만 만만찮은 무게의 각오와 결심이 필요했던 일이었다.

5. 가업을 잇는 이들에게 경의를

장 씨는 시아버지가 생전에 만들던 빵을 여태 그대로 만들고 있다. ‘노루(롤) 케이크’, 빵틀에 구워 만드는 바나나 빵, 거뭇거뭇해 ‘월남 과자’란 별명이 붙은 땅콩 과자…. 1980년대부터 만들었던 ‘마카롱’도 있는데, 요즘 같은 마카롱이 아니라 달걀도 크림도 넣지 않고 만드는 땅콩 맛의 퍼석퍼석한 식감의 쿠키다. 시아버지는 그때 대체 어디서 마카롱 얘기를 들었던 것일까.

독일제빵에는 장 씨가 새로 시작한 메뉴도 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두툼하게 만들어 내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수제 호두 파이’다. 호두 파이를 굽기 시작한 지 이제 10년쯤 됐는데, 춘천에서는 물론이고 외지에도 알려져 전국에서 택배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시아버지의 옛날 빵을 제치고, 호두 파이가 최고 인기메뉴로 등극했다.

독일제빵의 경우를 보면, 이름난 노포가 대를 잇는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가업을 잇는다는 건,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을 이어받아야 하는 결단이기도 하다.

‘대를 잇는다’는 것은 때로는 고민과 포기, 성숙과 체념이 뒤섞인 결정이다. 그래서 그게 더 소중하다. 세상이 아직 그 가치를 몰라주고 있는 분야라면 더 그렇다. 대를 잇고 있는 가게에 충분한 경의를 보여야 하는 이유다. 그 덕에 우리는 춘천을 여행하면서 반세기 전의 바나나 빵과 월남 과자를,그리고 최고의 호두 파이를 맛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27년간 한번도 못쉬다 한달에 두번 쉬겠다고 공지한 식당

전국 상인 팔씨름 대회 플래카드를 전시한 옷가게

졸업식·기념일을 치르던 추억의 경양식 레스토랑까지…

이야기가 담긴 공간서 ‘진짜배기 인생샷’을 남겨보자

6. 갈비와 막국수. 둘이 합쳐 127년

이번에는 3대(代)를 잇는 곳이다. 춘천에서 ‘노포 중의 노포’라 부를 수 있는 곳이 갈비집 ‘봉운장’이다. 외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춘천 사람들이 ‘춘천을 대표하는 고급 음식점’으로 첫손에 꼽는 곳이다. 봉운장은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꼭 70년을 맞는다.

‘봉운’이란 상호는 평안남도 순천에서 원주를 거쳐 춘천으로 피란 와서 식당을 연 창업주 김봉운 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 처음에는 빈대떡을 부쳐 팔았다. 가끔 도축장에서 소갈비를 사다가 도끼로 깨 구워 먹었는데, 그걸 손님상에 냈다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봉운장 창업주는 2014년에 세상을 떴고, 지금은 아들 김병준(76) 씨에 이어 손자 김승현(45) 씨로 3대를 이어 가고 있다. 봉운장 갈비는 달짝지근한 ‘옛날 갈비’다. 80년 내력의 서울 을지로 노포 ‘조선옥’에서 오래전 맛본 갈비 맛과 비슷했다. 제법 큰 건물을 짓고 식당을 깔끔하게 단장했지만, 갈비 맛만큼은 처음의 맛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급작스럽게 인기를 얻은 식당이라면 외지인에게 알려져 금세 긴 줄이 만들어지는 법인데, 여기는 춘천 사람들에게 오래 익숙한 곳이어서 그런지 타지 사람들에게는 덜 알려졌다. 게다가 창업주의 아들도, 손자도 외지손님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뜨내기손님을 불러들이는 게 단골들의 불편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 가도 봉운장에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이유다.

봉운장 맞은편에는 황해도 연백 출신의 창업주 이태식·양정화 부부가 1965년 개업한 ‘실비 막국수’가 있다. 춘천에서 ‘메밀 막국수’란 이름으로 처음 영업등록을 한 1호점이니 춘천 막국수의 원조 격이다.

창업주가 2005년 작고한 뒤 석사 출신 엔지니어인 창업주의 아들 이창훈 씨가 서울 대기업 직장을 포기하고 춘천으로 돌아와 가업을 잇고 있는데, 그 다짐을 가게 바깥에다가 적어 놓았다.

“저희에게는 반복해서 차리는 상차림이지만, 손님들에게는 ‘그리운 맛’이 되는 한 번의 식사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범상찮은 노포 두 곳은 서로를 예우한다. 봉운장의 손자 김승현 씨는 “어렸을 때 실비 막국수에서 국수를 자주 주문해 참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봉운장은 손님이 길 건너 실비 막국수에서 국수를 주문해 먹는 것을 용인한다. 덕분에 식당에서 다른 식당의 음식을 주문해 먹는, 드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7. 춘천의 통과의례 공간…함지

어떤 도시에나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통과의례의 공간으로 추억하는 곳이 있다. 춘천에서는 중앙로의 경양식 레스토랑 ‘함지’가 그런 곳이다. 함지는 1980년 문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다들 양식을 잘 알지 못했고, 양식당을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춘천 사람들에게 함지 레스토랑의 기억이, 졸업식 혹은 기념일의 추억과 겹치는 이유다.

함지가 춘천 사람들의 통과의례 공간이라는 건, 최근 입구 쪽에 새로 붙여 놓은 한 장의 사진이 증명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주인 이광석(79)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보름 전쯤 손 선수가 유소년축구대회에 참석차 춘천에 왔다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춘천 출신인 손 선수의 성장기 추억 속에도 함지가 있었다는 증거다. 이 씨는 “흥민이가 원주에 나가 있던 중학교 때나 서울에 있던 고등학교 때도,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에도 춘천을 들를 때면 꼭 한 번은 와서 밥을 먹고 갔다”고 했다.

함지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대번에 그곳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깊이가 ‘진짜’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옛것을 가져다가 시늉하듯 ‘레트로풍’으로 잘 꾸며 놓은 ‘가짜’ 공간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실내를 꾸민 그 시절의 ‘미감’(美感) 때문이다.

명색이 양식당인데도 민속주점에나 어울릴 듯한 멍석이며 소코뚜레, 함지박, 나무절구, 절편 틀, 삼태기, 주판, 호롱불, 도리깨, 맷돌 등이 있다. 마땅한 장식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막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젊은이들이 드나들던 곳의 분위기는 다 그랬다.

‘진짜’인 건 음식도 마찬가지다. 함지의 대표메뉴는 ‘정식’이다. 함박스테이크와 돈가스, 치즈를 얹어 구운 왕새우를 곁들인 메뉴다. 가격이 2만8000원이니 싸지 않다. 죄다 중년인 종업원의 서비스도 정중하고, 다른 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인데, 함박스테이크가 포크 끝에서 자꾸 부서지고, 잡냄새를 잡기 위해 넣은 카레 향이 좀 거슬린다.

그곳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의 동력이 음식보다는 ‘추억’인 듯한 게 좀 안타까운 느낌이다. 패밀리레스토랑에 손님을 빼앗기고 영업부진 속에서 긴 시간을 어렵게 견뎌 온 함지는 4∼5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레트로 바람을 타고 지금 한창 성업 중이다. 함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8. 시간이 없지, 갈 곳은 많다

춘천의 뒷골목에는 여행자가 가 보면 좋을 곳들이 얼마든지 더 있다.

요선동 먹자골목 끝의 ‘요선제면’은 65년 내력의 제면소다. 목수 일을 하던 이보화(88) 씨 남편이 처음 제면소를 열 때만 해도 춘천에는 국수를 뽑는 가게가 열 곳도 넘었지만, 지금은 여기만 남았다. 이 씨는 25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난 뒤부터는 딸, 사위와 함께 국수를 만들고 있다. 밀가루, 물, 소금. 요선제면은 예나 지금이나 이 세 가지만을 써서 전통방식 그대로 국수를 만든다. 막 뽑아낸 국수는 햇볕과 그늘을 옮겨 가며 건물 옥상에 이틀쯤 널었다가 상품으로 낸다.

요선제면에서 만든 국수는 사농동 두부요리 전문점 ‘콩이랑 두부랑’에서 콩국수로 맛볼 수 있다. ‘콩이랑 두부랑’은 2019년에 개업한 신생식당이지만, 실은 춘천 토박이인 식당 주인 허태웅 씨가 춘천 샘밭 근처에서 10년 가까이 운영했던 이름난 두부집을 사업실패로 날리고 나서, 새로 문을 연 곳이다.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허 씨가 콩 농사와 두부 만들기에 그야말로 ‘진심’이기 때문. 가격이 비싼데도 요선제면의 면만을 고집스럽게 쓰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 식당 한쪽에는 강원 출신의 전윤호 시인의 시가 걸려 있다. 상호 ‘콩이랑 두부랑’을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다 쓴 시다. 축하나 격려의 마음만 앞선 성근 축시가 아니라, 시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시의 마지막 행이 이렇다. “춘천에 가서 콩이랑 두부랑을 모른다면 / 참 곤란한 일이야 / 다리 하나 건널 때마다 헛헛해 / 주저앉을지도 모르니.” 메밀국수처럼 면 따로, 콩국 따로 내는 콩국수의 담박한 맛이 시에 부끄럽지 않다. 시의 나머지 부분은 직접 식당에 가서 읽어 보시길….

춘천 운교동 뒷골목에는 일본 심야식당 느낌이 나는 허름한 대폿집 분위기의 고깃집 ‘정선달’이 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저녁 식사를 겸해 소주 한잔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때마침 장맛비 내리는 날 저녁이라면 이곳에서의 술 한잔이 더 운치 있겠다.

정선달은 간판에 ‘제비추리 전문점’이라 써 붙였지만, 내놓는 건 제비추리 가 아니라 토시살이다. 그게 더 낫다는 게 주인의 설명. 1인분씩은 안 판다는 게 아쉽지만 참나무 숯에 석쇠를 얹어 구워 낸 고기 맛이 좋다.

춘천 명동에는 카세트테이프와 DVD를 파는 음반가게 ‘명곡사’가 있고, 중앙로 지하상가에는 커피 1000원, 달걀노른자를 띄운 쌍화차 3000원을 받는 ‘추억의 옛 다방’도 있다. 지금도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손님이 있을까 싶은데, 이석범(75) 명곡사 사장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게 문을 연다.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가게에 나왔지만, 지금은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의 추억담을 듣는 맛으로 나온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 이 사장은 “손님들과 추억담을 나누며 얻는 ‘힐링’이 돈보다 훨씬 더 값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춘천으로 떠난 ‘아싸 여행’에서 얻었던 위안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느낌이었다.

■ ‘가보자순대국’에 가 보자

춘천 도심에서 뚝 떨어진 신북읍 율문리에 ‘가보자순대국’이 있다. 천전초 담장을 낀 주택가의 뜬금없는 자리에 제대로 된 간판도 없이 들어선 식당인데, 점심시간이면 가게 밖으로 줄이 제법 길다. 줄 서는 맛집이라 소개하기 망설여졌지만, 줄을 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현지 주민들이고 무엇보다 순댓국 맛이 훌륭해서 여기서 따로 소개한다. 국물이 담박하고 직접 삶아 내는 순댓국의 부속고기들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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