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민노총 앞에 死文化되는 尹 취임사

기자 2022. 6. 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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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화물연대 파업에 尹정부 굴복

자유와 反지성주의 경고 흔들

레이거노믹스 착근과 대조적

안전운임은 가공의 개념인데

검증 없이 일몰제 합의 무력화

조금만 힘들면 또 굴복할 우려

법률적 의미가 아닌 일반적 의미의 소환은 중차대한 사건일수록 ‘지나간 일로 치부하지 말고’ 다시금 불러들여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와 민주노총의 화물연대 파업을 소환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시대정신으로서의 ‘자유’의 당위를 강조하고 ‘반(反)지성주의’를 경고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개인의 권리가 자유롭게 행사되고 시장이 자유롭게 숨 쉬는 곳’에서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다는 것이다. 자유 확대의 결과로서의 번영과 풍요라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이익을 위한 ‘힘의 결집’이 정의(正義)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이 5년을 기다려 온 취임사였지만, 취임사가 현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윤 정부 출범 1개월 뒤에 일어난 민노총 화물연대 파업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굴복함으로써 취임사는 처참하게 사(死)문서가 됐다.

정부가 새로 출범할 때 모든 정치·사회 세력이 우호적일 순 없다. 민노총이 윤 정부에 호의적일 리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사전에 도상계획이라도 짜 놨어야 했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정권이 공짜로 착근되는 건 아니다. 노조와 힘겨루기를 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를 벤치마킹했어야 했다.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는 1981년 8월 새로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를 상대로 전면 파업을 벌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관제사의 파업을 ‘국가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규정, 48시간 안에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1만3000명에 이르는 관제사 중 복귀한 사람은 10%에 지나지 않았지만, 레이건은 미복귀자를 전원 해고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공항 관제가 가능했던 것은 군 관제사와 은퇴 관제사를 도상계획에 따라 미리 확보했기 때문이다. 관제사 노조는 불법 파업에 대한 벌칙으로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결국에는 해산됐다. ‘레이거노믹스’가 공짜로 착근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 전(全) 차종 확대 적용’을 내걸고 운송 거부에 들어갔다. 안전운임제는 화주와 화물차주 간의 경쟁을 제한하는, 차주에게 유리한 독과점적 운임 담합의 성격이 짙다. 최저임금에 비견되는 일종의 최저운임제인 것이다. 2020년에 ‘안전운임제’를 처음 도입할 때 교섭 대상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시범적으로 ‘시멘트와 컨테이너 운반 차량’에 한해 ‘3년 일몰제’로 시행한 것이다. 교섭력이 큰 대형 화물트럭이 혜택을 본 것이다.

3년 일몰제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즉, 3년 후 운임 결정 구조를 경쟁 체제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화물연대의 일몰제 폐지 요구는 안전운임제라는 꿀단지를 일몰에 관계 없이 항구적으로 누리겠다는 것이다. 2020년 안전운임제를 처음 시행하면서 화물연대가 합의한 일몰제를 스스로 걷어찬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안전운임’은 가공의 개념이다. 안전을 보장하는 운임은 없기 때문이다. 안전운전은 운전자의 ‘태도와 문화’에서 나온다. 과적과 과로 운전은 ‘축의 하중과 운전기록장치’를 통해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데도 힘을 결집해 운임에 손을 댄 것이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시행으로 교통안전이 확보됐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이던 2017∼2019년 5300∼6100건 수준이던 화물차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시행 이후인 2020년에 5900건으로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4만5000여 건에서 4만여 건으로 약 11% 줄었음을 고려하면, 안전운임제 효과는 기각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부채의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도 화물연대는 집단 운송거부를 강행했고, 우리 경제의 급소라 할 수 있는 자동차와 반도체 물류도 마비시켰다. 집단이익을 위해 경제의 급소를 찌르기까지 하는 화물연대에 굴복하면서, 자유를 강조하고 반지성을 경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번 파업으로 ‘노(勞)에 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화려한 취임사에 취해 민노총에 무장해제 당한 것이다. 노에 기울어 복원력을 잃으면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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