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학의 거목.. 저서 '경제학 원론'은 국민 교과서

조해동 기자 2022. 6. 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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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학계의 거두(巨頭)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고인에게는 '한국 현대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대표적인 경제학자'라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고인이 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오랜 세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였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고인의 경제학 원론이 한국에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학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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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노환 치료 중 타계… 향년 94세

1988년 노태우 발탁으로 공직에

한은총재·경제부총리 모두 역임

서울시장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

한국 경제학계의 거두(巨頭)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94세. 의료계에 따르면 조 명예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6·25전쟁 당시 육군 통역장교와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으로 군에 복무하다가 종전 후 도미(渡美), 미국 보든대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뉴햄프셔대 조교수로 활동하던 고인은 1968년 귀국해 서울대 상과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러다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이 있는 노태우 대통령의 요청으로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으면서 공직에 입문했다.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면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경제부총리와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 고인은 1997년 민주당 총재와 대선 주자, 한나라당 총재와 명예총재 등을 거치며 화려한 정계 생활을 보냈다. 지난 2000년 당시 민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가면서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뒤 명지대 석좌교수와 서울대 명예교수 등을 지냈고, 한국고전번역원 회장·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고인에게는 ‘한국 현대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대표적인 경제학자’라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한국에 아직 미국식 현대 경제학의 뿌리가 일천하던 1960년대에 미국에서 배운 최신 경제학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학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고인이 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오랜 세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였다. 경제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비(非)전공자, 고시생들에게까지 인기가 많았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고인의 경제학 원론이 한국에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학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책은 제자인 정운찬(75) 전 국무총리와 공저로 업데이트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92) 씨와 아들 기송·준·건·승주 씨가 있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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