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국제스포츠의 수도 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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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은 프랑스 남작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이 창시했다.
1892년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 천명한 그는 각종 국제회의장 등 가히 전 세계를 돌며 정치인 및 스포츠 지도자들의 동참을 호소, 2년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설립했다.
1914년 IOC 파리 총회에서 그가 지구촌 화합의 정신을 상징화한 오륜기 올림픽 엠블럼을 소개한 그해 1차대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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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은 프랑스 남작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이 창시했다. 1892년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 천명한 그는 각종 국제회의장 등 가히 전 세계를 돌며 정치인 및 스포츠 지도자들의 동참을 호소, 2년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설립했다. 올림픽 부활의 최대 순풍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민족주의 열풍이었지만, 그건 쿠베르탱이 생각한 올림픽 정신, 즉 세계인의 우정과 유대의 최대 걸림돌이기도 했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IOC 본부를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 파리에서 제3지대로 이전한 까닭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염두에 둔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언젠가 유럽에 새로운 올림피아가 세워진다면,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가 적당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고, 1906년 ‘Olympic Review’에 쓴 글에도 스위스가 국제스포츠의 구심점이자 여왕 같은 곳이 돼야 한다고 썼다.
당시 그는 고대 올림픽처럼 올림픽을 한 도시에서 열 생각이었고, 처음 염두에 둔 곳은 로잔 인근 레만 호숫가 휴양지 모르주(Morges)였다. IOC 위원 대다수는 하지만, 자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대회를 치르길 원했다. 위원들은 타협안으로 IOC 본부만큼은 위원장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대규모 스타디움과 종목별 경기장, 선수촌 대신 본부만 짓는다면 제네바호수의 도시인 보주의 주도 로잔(Laussanne)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게 쿠베르탱의 판단이었다.
1914년 IOC 파리 총회에서 그가 지구촌 화합의 정신을 상징화한 오륜기 올림픽 엠블럼을 소개한 그해 1차대전이 터졌다. IOC는 이듬해 6월 23일 본부를 로잔으로 옮겼고, 쿠베르탱은 1925년 IOC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로잔 올림픽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며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 로잔은 올림픽의 수도이자 55개 국제 단체가 밀집한 국제스포츠의 구심점이 됐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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