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서 팔다리 잃은 웨버 대령 안장식, 미국 '최고 예우' 표했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2. 6. 2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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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안장식
예포, 조곡 등 최고 의전 절차
유족들 "한미 군인들의 노고 알리려고 했던 그의 목표 이뤘다"

“그는 강한(strong) 사람이었습니다. 피를 흘리며 희생한 한·미 군인들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어했고, 원하던 바를 이뤘습니다. 하늘서 웃고 있을 겁니다.”

6.25 전쟁 영웅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이인 애널리 여사가 22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내셔널 몰 내에 조성된 '추모의 벽'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애널리 여사는 이날 '죽기 전에 추모의 벽 준공이 마무리 된 것을 보고 싶다'는 웨버 대령의 유언에 따라 안장식에 앞서 오전 이 곳을 찾았다. /이민석 특파원

22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6·25 전쟁 영웅 고(故) 윌리엄 웨버(97) 미 예비역 육군 대령의 안장식(安葬式)에서 부인 애널리 여사는 본지에 이렇게 말했다. 웨버 대령은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 부대 소속 대위로 6·25에 참전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그는 서울 수복 이후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북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된 이후 중부전선 격전지 원주에서 수류탄에 맞아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현역 장교로 복귀해 1980년까지 군 복무를 했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전후(戰後)부터 지난 4월 별세 직전까지 6·25 전쟁 미군 전사자 3만6595명,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총 4만300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새긴 ‘추모의 벽’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공원 외곽을 참전 용사들 이름이 적힌 대리석 벽 100개를 만드는 방식으로 조성됐다. 추모의 벽 준공은 막바지 단계로, 다음달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아 제막식이 거행된다.

안장식에 앞서 웨버 대령 유족은 워싱턴DC의 6·25 참전용사기념비공원에 건립된 ‘추모의 벽’ 현장을 찾았다. 웨버 대령이 “죽기 전 추모의 벽 현장을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전 유언에 따른 것이다.

한국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웨버 대령이 생전 왼손으로 경례하는 모습. 연합뉴스

휠체어에 탄 애널리 여사는 대리석에 새겨진 군인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렇게 정성 들여서 만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했다. 애널리 여사와 손녀 데인 웨버 등은 현장 공사 관계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면서 “훌륭한 일을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애널리 여사는 “이곳에 매년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찾지만, 이 공원이 한국전을 기리는 곳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나라를 위해 희생했지만 기억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남편은) 바꾸고 싶어했다. 그의 소원이 조금은 이뤄진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은 추모의 벽 인근에 미리 가져온 장미 꽃을 놓으면서 그를 기렸다.

손녀 데인씨는 “할아버지는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 한번도 후회되지 않았다’라고 꿋꿋이 말씀하셨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22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6·25 전쟁 영웅 고(故) 윌리엄 웨버 미 예비역 육군 대령의 안장식(安葬式)이 진행되고 있다. 의장대와 마차, 운구팀, 나팔수, 예포 등의 모든 의전 절차들이 최고 예우를 갖춰서 이뤄졌다. /이민석 특파원

이날 오후에 열린 안장식에는 그의 아내 애널리 여사와 손녀, 며느리들과 얼마 남지 않은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참석했다. 그와 3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참전용사 찰스 치플리씨는 “빌(웨버씨의 이름)은 피땀 흘려가며 한국을 지켰지만 기억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고자 했고,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길을 묵묵히 갔다”며 “그의 굳은 의지는 우리에게도 많은 귀감이 됐다”고 했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그는 한국전에서 피를 흘려가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웠다”며 “우리 모두는 그가 한 노력들을 새기고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안장식은 최고의 예우를 받으면서 진행됐다. 성조기에 감싸져 있는 웨버 대령의 관이 6마리 말이 이끄는 옛 탄약 마차로 옮겨진 뒤 묘역으로 운구됐다.

이후 웨버 대령을 기리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된 뒤, 관악대의 조곡이 국립묘지에 울려퍼졌다. 알링턴 국립묘지 관계자는 “의장대와 마차, 운구팀, 나팔수, 예포 등의 모든 의전 절차들이 최고 예우를 갖춰서 이뤄졌다”고 했다.

이후 의장대 중 한 명이 웨버 대령의 관을 감쌌던 성조기를 고이 접어 애널리 여사에게 전달했다.

안장식이 끝날 무렵 갑자기 10분가량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웨버 대령의 관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들어갔다.

이날 의장식에는 한국 정부를 대표해 조태용 주미대사, 이경구 국방무관 등이 참석했다. 조 대사는 “웨버 대령의 뜻을 기려 한미 동맹이 미래세대에도 계속 튼튼히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미동맹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자산으로 우뚝 서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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