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니얼굴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이었던 형과 나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는데, 그림물감 색깔로 치자면 검은색. 형은 애초 말을 못했고, 나는 말을 잃은 아이였다. 우리는 주로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는데, 땅바닥에다 나뭇가지로 죽죽 좍좍. 예수도 땅에다 그림을 그렸다고 성경에 나와 있더군. 그 친구도 째지게 가난했나봐. 그림은 깨끗한 도화지에 그린다는 걸 알았지만 식구는 많고 공책도 아껴 썼다. 형이 교과서며 공책마다 낙서를 해버리는 통에 학교에서 나는 매를 맞기도 했어. 형에 관한 사정을 입도 벙긋하고 싶지 않았다. 형이 시설로 떠나면서 눈앞에 사라지자 기뻐 환호성.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자 맘이 불편하고 괴로웠다. 지금껏 슬프고 아프다.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에 마음을 보태고,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죽은 형이 살아온 듯 느낀다.
영화 <니얼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알려진 정은혜 작가를 지난주에 만났다. 엄마 현실님은 오랜 인연. 주변의 친구들도 다 알음알음 아는 사이. 은혜씨가 가수 김현식을 좋아한대서 엘피음반을 선물하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은혜씨는 우리 형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천재급. 무엇보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 벌써 줄을 섰다고 하는데, 당신도 얼굴 그림 하나 가지시길. 먼저 개봉 영화부터 보시고.
엄마이자 만화가인 현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 “예술이 우리 모두를 살렸고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어요. 예술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 삶을 헤쳐나올 수 있었겠어요.” 은혜씨랑 예술적으로다가 치맥을 했는데 건배사를 선창하면서 즐거워하던 미소를 기억한다.
나와 당신은 각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얼굴을 자주 고치는 사람은 내 얼굴이 아니라 ‘그얼굴’로 또 살아가겠지). 내가 가진 얼굴은 신이 선물한 얼굴. 할아버지 할머니 미소도 깃들었어. 장애인 친구들은 건물주 밑에 조물주 하느님의 얼굴을 갖고 있지. 주눅이 들어 있지만 손을 잡고 볼을 비비면 꽃처럼 환해지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얼굴이 그리워. 니얼굴이 내 얼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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