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예술인 옥죄는 '젠트리피케이션'
몇 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문화·예술의 싹들’이 땅거죽을 헤치며 머리를 내민다. 비온 뒤 죽순이 솟아나듯 쇠락한 도심 곳곳에 소규모 예술촌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죽었던 거리에 피가 돌고 짙은 문화의 향기가 번지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거듭난다. 서울 경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김해 봉리단길(봉황대길) 등이 그런 곳이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국민도 여유로워지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사회현상일지 모른다. 선진국의 조건 중 하나는 문화·예술의 꽃이 피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라고 볼 때 반길 일이다.
문제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급격히 올리면서 예술인이 쫓겨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이다.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매정한 일이다. 경남 김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6, 7년 전 김해문화의전당 뒷길에 살던 예술인들도 같은 이유로 쫓겨났다. 이들은 집값이 저렴한 회현동의 마당이 딸린 주택 한 채를 사들였다. 회현동 일대는 옛 도심인 데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인 곳이 많아 지가가 낮았기에 가능했다. 이 곳은 공연과 문화행사 등이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하면서 ‘봉리단길’ 형성의 출발점이 됐다.
이 곳에서 테너 남편과 피아니스트 부인이 운영하는 ‘하라식당’은 MZ세대 사이에 최고 ‘맛집’이다. 일제 때 건물을 보수해 문을 연 ‘카페봉황1935’와 청년 맛집이 차례로 문을 열면서 마을 전체에 생기가 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다.
하지만 다른 곳의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해 장유 대청천계곡은 원시림을 가진 청정지역으로 휴일이나 여름철이면 탐방객이 찾는다. 몇 해 전부터 화가 도예인목공예작가 등이 사는 장유예술촌이 형성됐다.
김해시는 이들을 위해 예술촌 앞에 널찍한 공간의 전망대를 조성했다. 이곳에서 색소폰과 기타연주가 이어지는 버스킹이 자주 열린다. 도심과 떨어져 변변찮았던 곳이 어느새 예술인이 터 잡고 가꾸면서 장유를 찾으면 가봐야 하는 명소가 됐다.
그러나 이 곳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고 있다. 한달여 전 이 곳의 한 카페에서는 작가 예술인 등이 참가한 가운데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한 도예가는 “건물주가 최근 자주 찾아와 덜컥 겁이 난다”며 “과거 이 곳은 도심과 떨어져 임대료가 낮았지만 최근 이 곳이 뜨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칫 쫓겨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술인이 쫓겨나고 그 자리에 계곡을 내려다 보는 휘황찬란한 커피숍이 들어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 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일이 생기면 시민 혈세를 들여 만든 멋진 전망대를 뜯어 내기라도 해야 할까.
비슷한 문제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대안을 마련하는 곳도 있다. 전북 익산시는 예술의거리 내 건물을 10년째 매입해 작가에게 무료나 저렴하게 빌려준다. 개인 건물에 작가가 살면 월세 등을 지원한다. 근대문화의 보고인 광주시 양림동은 주민 주도로 건물주와 10년 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장기계약을 맺으며 실마리를 찾고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사회 환경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권하고 싶다. 지자체는 장사가 안 되는 세입자의 임대료를 깎아주는 건물주에게 재산세 등을 낮춰주는 ‘착한 임대료’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예술인 거주 공간의 임대료를 책정할 때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10여 년 전 지자체들은 앞다퉈 거액을 들여 예술촌을 조성했지만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조성 비용이 많이 들고 억지로 입주할 예술인도 드물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작가들이 예술촌을 형성하고 지역의 브랜드가치를 높여주는 일보다 고마울 데가 있을까. 김해시는 2021년 정부로부터 ‘법정문화 도시’로 지정됐다. 예술인을 옥죄는 당면 문제를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다. 시 주도로 예술인 건물주 시의원 등이 머리를 맞대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박동필 메가시티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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