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 무비자’ 먼저하면 어떤가

성호철 도쿄 특파원 2022. 6.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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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일 오후 7시쯤부터 도쿄 미나토구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부 건물 앞에 관광비자를 신청하려는 시민 30여명이 밤샘 대기를 준비하고 있다./도쿄=최은경 특파원

어느 일본 네티즌이 엊그제 트위터에 한국 비자 받은 인증 글을 올렸다. ‘새벽 5시 45분 도쿄총영사관 도착. 순번표 30번 받음. 8시 30분 총영사관 업무 시작. 8시 50분 순번표 ‘1번’의 이름이 불림. 9시 22분 비자 받음.’ 우리나라가 이달 1일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하고 나서 매일같이 ‘한국 비자 인증’ 글이 올라온다. 귀하기 때문이다. 도쿄총영사관이 발급 가능한 관광비자는 하루 150명. 열성 한국팬이 아닌 한 일본인이 올여름 휴가를 서울이나 제주도에서 보내기란 쉽지 않다. 한류 거리인 도쿄 신오쿠보엔 20~30대 젊은 일본인들이 매일 저녁 한글 간판을 단 ‘00포차’를 가득 메운다. 며칠 전 옆자리 앉은 일본인에게 물어보니 “한국에 가고는 싶은데 비자 받을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일 왕래가 막힌 때는 2020년 3월이었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 대책으로 한국을 포함한 외국인의 입국을 막자, 다음 날 문재인 정부는 ‘상호주의’를 내세워 일본인의 한국 입국을 막았다. 중국인은 와도 되는데 일본인은 안 된다는 조치였다. 일본인의 한국 방문은 2019년 327만명에서 작년 1만5000명으로 급감했다. 윤석열 정부는 5월 출범 후 일본인에게 문을 열었다. 다만 반만 열었다. 무(無)비자는 허용 않고 관광비자를 받고 오라는 것이다. 역시 전 정부가 내세운 논리였던 상호주의가 이유였다. 일본이 한국인에게 비자를 요구하니 한국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 관광업계 전문가는 “상호주의가 절대 명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인에게 무비자를 준 때는 1993년이었다. 한시적 조치였지만 매년 연장했다. 일본이 비슷한 ‘한시적 무비자 조치’를 취한 때는 2005년이다. 양국 간 무비자 입국은 2006년에야 맺었다. 외교부가 상호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는 ‘대일 굴욕 외교’ 같은 비난을 피하려는 까닭일 뿐이다.

상호주의를 무조건 고수한다면 연내 양국 간 무비자는 어려울 듯하다. 일본 외무성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무비자를 결정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위드 코로나’로 가는 추세지만 섬나라 일본 여론은 ‘코로나 쇄국’이 강한 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여론조사(16~17일)에서 외국인 입국 제한(1일 2만명) 확대에 대해 ‘늘리자’(49%)와 ‘늘리지 말자’(44%)는 팽팽했다.

외교부는 마냥 ‘일본 탓’만 하면 되니 편하다. 하지만 이제 관광 영역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로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인구, 국토 면적, 경제에선 여전히 한국이 일본보다 규모가 작지만 오징어게임·BTS·트와이스 등의 활약에서 보듯 대중문화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넘는 대국이다. 한류를 사랑하는 일본인에게 ‘무비자 선물’을 줄 정도로 통 큰 가슴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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