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파란 눈으로도 세상이 잘 보여요?”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2022. 6.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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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 첫 한국 근무 때 “파란 눈으로 보면 파랗게 보이나” 질문 받아
처음엔 한국인들 관심 불편했지만 곧 애정에서 비롯된 것 깨달아
BTS 활동 중단을 외신이 톱뉴스로 전하는 나라 됐어도 情은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정도가 덜해졌을지 몰라도 한국에서 나는 항상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미군 헤어스타일도 아닌 데다 키는 멀대같이 크고 마른 백인을 1980년대에 부산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었기에, 어디를 가나 행인들 시선은 내게 향했다. 특히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거나 조깅할 때면 아이들이 어김없이 달려와 내 팔다리를 가리키며 “헬로 미스터 몽키”라는 노래의 후렴구를 부르곤 했다. 대체 어디서 나온 노래길래 그토록 많은 아이가 따라 부르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아이들이 악의를 갖고 놀리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고 외출하기가 때로는 불편했다.

당시 부산 외곽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파란빛의 눈이 낯선 모양이었다. 미 외교관 업무의 하나로 이따금 한국에 수감된 미국인들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한번은 부산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구금 시설에서 교도소장, 직원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소장은 대뜸 몸을 숙이더니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파란 눈으로도 세상이 잘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다른 직원이 내 쪽으로 바싹 몸을 기울이며 내 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참에 본인의 의학적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듯했다. 그는 내가 보는 세상에 파란색이 덧입혀져 있지 않은지 물었다. 나는 그것은 눈 색깔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대답했다.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항상 궁금했노라고 덧붙였다.

/일러스트=이철원

한국에서 살면서 이런 일 말고도 끊임없는 관심과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황급히 시선을 피하는 사람도, 해맑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상황을 무마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런 시선이 꽤 신경 쓰였지만, 차차 한국인들의 이러한 관심이 모두 진정 어린 친절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외양적으로 다르다고 나를 보며 킬킬대거나 난처한 질문을 던지는 이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인들의 속 깊은 배려와 친절을 경험할 기회가 더 많았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은 레스토랑이나 공연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주거나 앞좌석으로 안내했다. 식사할 때는 최고의 서비스와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는지 유난스러울 정도로 재차 확인하곤 했다. 이러한 환대를 받을 때면 약간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감사했다. 황송한 대접의 중심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나처럼 호기심 많은 외국인과 가감 없이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자리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열고 한국에 관해 최대한 많이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할수록 한국인들은 그 이상으로 화답해 주었다.

1984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에서 근무했지만 지금부터 8년 전, 한국에 돌아온 시점에는 특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간 한국은 큰 도약을 이루었고 어느덧 글로벌 비즈니스,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한국에서 길을 가다 외국인을 보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중에서도 한국어를 유독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조우할 때면 나는 경탄을 금치 못하고 부러워하곤 한다. 한국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이야말로 무엇보다도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문화의 허브로서 한국은 이미 자석과 같은 매력으로 세계인을 끌어당기고 있다.

실제로 지난주 대전 출장 중에 이런 한국의 성장과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대전과 서울을 오가는 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한국의 뛰어난 5G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생방송 TV가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었다. BBC 채널의 헤드라인 뉴스로는 ‘BTS 단체 활동 잠정 중단’이 보도되었고, 이것이 전 세계 음악 산업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K팝을 연구하는 한 미국인 교수가 출연해 논평하기도 했다.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문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유학생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문화적 파급력,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젊은 인재들을 보며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새삼 체감한 날이었다.

한국의 발전 양상뿐 아니라 국내외 삶의 수준 향상에 한국이 기여하는 바를 생각하면 언제나 놀랍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보다도 유일하게 변치 않은 한 가지에 나는 더욱 깊이 감동하고 가치를 둔다. 이는 바로 내가 1984년 처음 발견한 한국인의 온정과 친절이다. 당시 한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교류하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배우고 느꼈는데, 그때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오늘도 매일 그 따스함이 전해진다. 여전히 한국의 삶이 매일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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