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리거의 기적' 제주 김범수의 희망가 "꼭 살아남을 것"

황민국 기자 2022. 6. 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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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범수
고교 졸업하고 갈 곳 없어 군 입대
제대 후엔 하부리그 전전 ‘고난길’
작년 K4리그 뛰며 스카우트 눈독
입단 당일에 데뷔전 ‘경쟁력 입증’
K리그1 벽 실감했지만 호평받아
“한국판 제이미 바디 되겠다” 포부

삶에는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다. 축구에서도 밑바닥 하부 리거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동화같은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아마추어 7부 리그를 전전하다 1부 리그 프로선수로 변신한 김범수(22)가 그렇다. 갈 곳이 없어 군복을 입어야 했던 그는 이제 당당한 K리거다. 김범수는 지난 21일 프로축구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 입단이 발표되자마자 대구FC를 상대로 선발 출전했다.

이날 왼쪽 윙어로 출전해 김범수가 그라운드를 누빈 시간은 36분.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자신의 재능을 입증하기엔 충분했다. 경기 전만 해도 마스크를 뒤집어 쓸 정도로 긴장했던 그가 돌파 플레이를 펼칠 때면 적지에서도 함성이 나왔다. 실제로 대구 수비수인 정태욱과 미드필더 이진용은 그를 막느라 경고를 한 장씩 헌납해야 했다.

김범수는 경기 후 기자와 만나 “제주에 입단하고 당일 데뷔는 상상도 못해 부모님에게 말씀도 못 드렸다”면서 “사실 내 원래 목표는 그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K3 리거가 되는 것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김범수의 소박한 바람은 절망과 좌절로 가득했던 그의 이력에서 잘 드러난다. 축구선수 김범수는 고교 졸업 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원축구의 명문이 아닌 평범한 클럽축구팀에서 기량을 키운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프로 입문(울산 현대·1부)과 진학(홍익대·숭실대)을 타진했으나 모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단 테스트에서 실패할 때마다 눈을 조금씩 낮췄던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군 입대뿐이었다.

2019년 육군에 현역으로 입대한 김범수는 남들이 쉴 때 몸을 만들며 축구선수로 성공할 자신의 미래를 꿈꿨다.

김범수는 “6군단 예하 5기갑여단 출신이란 게 자랑스럽다”면서도 “자기정비 시간에 운동할 때는 참 눈칫밥도 많이 먹었다. 그때는 나도 지금처럼 프로가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군복을 벗은 뒤에도 비단길은 없었다. K5 리그(5부)인 동두천 원팀과 ‘조기축구회’나 마찬가지인 K7 리그 동두천 TDC를 거쳐 지난해 여름부터 K4 리그 서울중랑축구단에서 뛰었다. 그러다가 제주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R리그(2군) 입단 테스트 등 몇 차례 검증을 거쳐 제주 유니폼을 입었다. 아직 몸값은 프로 최저 연봉(2400만원)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제주 구단 고위 관계자는 “공을 갖고 있을 때와 아닐 때 모두 위협적인 플레이를 펼친다”면서 “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을 충족하는 군필 선수라는 점에서 가치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제주 남기일 감독도 “데뷔전에서 다음 경기를 기대할 실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범수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멀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빠른 경기 템포와 수준 높은 전술, 볼 소유 그리고 선수들의 실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한 그는 “내 목표는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범수는 자신의 성공이 하부 리그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옛 동료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시티의 ‘늦깎이 신화’ 주인공인 제이미 바디(35)가 등장한 이후 하부 리그 선수들이 부각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범수는 “축구팬들이 나를 한국판 제이미 바디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면서 “앞으로 제주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바디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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