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어 경찰 장악?.. 경찰국은 '공룡 경찰' 견제인가 통제인가

김건호 2022. 6. 2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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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경찰 통제 위한 권고안 21일 발표
"옳은 선택인지 의문" 경찰, 수사개입 우려
경찰 내서도 비판 목소리.. 내부 반발 변수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앞에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이제 검찰이 아닌 경찰이 타깃이 됐다.”

22일 지방경찰청장 출신의 한 인사는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신설 등 논의에 대해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대표되는 검찰 견제가 이뤄졌는데 이번엔 경찰이 타깃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사문화되어있던 행안부의 인사권 행사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군사정권 시절 독립한 경찰청을 다시 행안부에 두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의문스럽다”고 평가했다.

행안부 산하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 신설 등 경찰 통제를 위한 권고안을 21일 발표했다. 검찰 인사·예산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처럼 행안부 내에 이른바 ‘경찰국’ 같은 조직 신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룡 경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명분이 제기되지만, 수사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경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공룡 경찰을 견제하라” 타깃된 경찰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경찰권의 견제는 어느 정도 예고돼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검수완박으로 인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인식한 정부는 검찰 수사의 정상화와 함께 경찰권의 견제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고, 행안부의 이번 경찰국 신설 논의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 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대 자문위원. 황정근 변호사,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연합뉴스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경찰의 민주적 관리·운영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권고안’에는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 신설 △행안부 장관의 소속 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 △경찰 인사절차의 투명화 △감찰·징계제도 개선 △경찰 업무 관련 인프라 확충 △수사 공정성 강화 등이 담겼다.

자문위는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 경찰 고위직 인사를 위한 후보추천위 설치, 장관에게 경찰청장을 포함한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징계요구권 부여 등도 권고했다.

자문위는 최근 법 개정으로 검사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과 불송치 결정권을 주면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 권한이 확대된 만큼, 권력 균형을 위해 견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조직과 권한이 커진 ‘공룡 경찰’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경찰 안팎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경찰은 대부분 사건의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을 갖고 있고, 오는 9월부터 부패·경제 범죄를 제외한 중요 범죄에 대한 독자 수사권을 갖게 된다. 2년 뒤부터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도 넘겨받는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처럼 강화된 경찰권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며 “경찰국 신설 등 법에 따라 행정안전부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을 반대하는 경찰청 직장협의회 명의의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공룡 경찰 견제하려다 수사독립 훼손하나

권고안 중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은 경찰 관련 지원조직인 경찰국의 신설이고 그 명분은 경찰 견제다.

문재인 정부 등 지금까지 경찰에 대한 정부 통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이뤄졌다. 주요 경찰 인사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경찰청과 함께 논의하고 행안부는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독립을 외쳐온 이번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했지만, 행안부가 실질적인 인사권한을 행사하며 이를 대행하게 되는 모양새다.

과거 군부독재 시설 정권은 행안부의 전신인 내무부 치안국과 치안본부를 통해 경찰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91년 행안부의 외청으로 경찰을 독립했다. 그런데 이번 경찰국 신설을 통해 정부가 경찰의 인사·감찰 사무 등에 관여할 경우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에 대한 징계요구권을 무기 삼아 수사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서울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비판에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면서도 “그 방식이 행안부 산하 경찰국 신설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정부에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전·현직 검사들이 법무부를 장악했던 사실에 비춰보면 경찰국 신설은 경찰의 수사독립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찰 내 커지는 비판 목소리, 내부 반발 변수

경찰은 반발하고 있다. 경찰청은 행안부 발표 직후 김창룡 청장 주재로 18개 시도경찰청장 회의를 소집해 2시간가량 논의한 뒤 성명을 내 “경찰을 둘러싼 그간의 역사적 교훈과 현행 경찰법 정신에 비춰 적잖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번 권고안은 민주성·중립성·책임성이라는 경찰제도 기본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행안부의 권고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김 청장은 이어 “나아가 국가 조직 기초이자 헌법 기본원리인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경찰제도와 활동은 국민의 생명·신체·인권·자유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부작용은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과 폭넓은 논의를 이어갈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김창룡 경찰청장. 뉴스1
일선 경찰들도 권고안이 발표되자 일제히 반발하는 모양새다. 경기남부경찰청 직장협의회는 “1991년 이후 외청으로 개편돼 독립적 치안 행정을 한 조직에 대해 경찰국을 만든다는 권고는 경찰청을 옛날 치안본부로 격하시키는 시대적 역행의 착오다”며 “경찰청 예산과 인사, 감찰, 정책 권한 통제는 경찰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민주 경찰 근간을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또 “경찰 권한을 통제하겠다는 행안부 직제령은 법률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다”며 “법적 근거 없는 경찰국 신설을 당장 중단하고 국가경찰 위원회와 자치경찰위원회 권한을 강화, 경찰청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남부청뿐만 아니라 각 시도 경찰 역시 같은 의견을 내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경찰개혁네트워크도 반대 의견을 펼쳤다. 이 단체는 “행안부 경찰 통제 권한이 강화되면 경찰 독립성이 약화하고 정치권력에 직접 종속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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