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국가전략기술에 투자 집중해야 한다

2022. 6. 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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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진보 ETRI 센터장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격변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대다수 전문가들은 단연 20세기 전반부를 꼽을 것이다. 제2차 산업혁명의 열풍 속에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이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그렇지 못했던 국가들이 식민지로 전락해 가던 20세기의 벽두를 지나자마자, 인류는 제국주의 국가 간 패권경쟁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이 잉태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스페인독감이 창궐했고, 이어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악몽을 겪은 후 미·소 냉전체제가 만들어진 시기가 바로 20세기 전반부였다. 이러한 격변기에 주요국들은 경쟁국이 추격할 수 없을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그 와중에 압도적 두각을 나타낸 국가가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된 원인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거대한 전시경제 체제, 즉 양적 우위를 말하곤 하지만, 미국의 첨단과학기술력, 즉 질적 우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20세기 초반부터 첨단과학기술 분야 선도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은 전파·전자·소재·해양 등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선도국이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에서 주축국에게 밀리던 영국은 강력한 첨단기술들을 거의 무상으로 미국에 이전하기 시작한다. 엔진용 공기압축 기술, 비행기의 항속거리를 늘려주는 과급기 기술, 제트엔진 기술, 적 잠수함을 탐지하는 소나 기술, 마이크로 주파수 레이더 기술, 그리고 원자폭탄 기초기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영국의 첨단기술과 미국의 산업생산력이 결합함으로써 추축국들을 압도할 수 있는 양적·질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에 더해 미국 루즈벨트 행정부가 전시에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과학연구개발국(OSRD)을 설립해 전폭적인 R&D 투자를 하고, 뉴딜정책의 추진과정에서 확보한 행정·통계 역량을 결합해 효율적인 전시지원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우위를 한층 강화하게 된다.

이후 전쟁에서 패한 독일의 로켓·화학·재료 전문가와 기술을 빠르게 흡수한 미국은 영국과 독일을 제치고 첨단과학기술 선도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발전시킨 기술력을 동맹국들, 심지어 전폭적인 기술이전을 해주었던 영국에게조차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20세기 후반에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돌이켜보며 현재의 21세기 전반부를 조망해보자. 21세기 전반부 역시 격변의 연속이다. 제4차 산업혁명,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팬데믹, 지정학적 리스크 대두, 미·중의 정치·경제 패권경쟁 등의 격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격변 상황에서 주요국들은 치열한 첨단기술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독자적 기술경쟁력 확보에 주력하는 양상이다. 군사·경제 패권경쟁보다 더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21세기 전반부의 첨단기술 패권경쟁이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 12월에 AI, 5G·6G, 첨단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 기술을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올 6월 초에 전략기술기획자문단을 출범시키면서 추진체계와 로드맵 구상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외교·안보·정책 및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망라되어 계획하는 정책이기에 어련히 멋진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 의심치 않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바로 전략기술 자립의 중요성이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R&D 투자 비율 면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이지만 절대적 R&D 투자금액 측면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선도국들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기에, 모든 국가전략기술의 자립화를 이루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다만, 20세기 첨단기술 패권경쟁의 역사를 곱씹어 보고, 적어도 자립화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국가전략기술 분야를 명확하게 선정해 집중 투자하는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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