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치안감 기습 인사에 번복까지.. 윗선 개입 의혹 증폭

권구성 2022. 6. 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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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사태'에 시끌
행안부 장관 귀국하자마자 인사
부임 하루 전날 오후 7시 발표
경찰 "실무자의 실수였다" 사과
1시간 뒤 "행안부가 잘못 보내"
인사 명단까지 수정돼 설왕설래
李장관 "대통령 결재 전 공지된 것"
대통령실 "경찰 길들이기는 허위"
22일 서대문구 경찰청사의 모습. 뉴스1
정부가 경찰 고위직 인사를 번복한 사태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 ‘윗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안 발표로 일선 경찰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정부가 인사권으로 경찰을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경찰 안팎에서는 전날 치안감 인사를 두고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유의 사태”라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보직상 시·도경찰청장에 준하는 치안감 인사를 부임 하루 전날 오후 7시쯤 기습적으로 발표한 데다, 이를 2시간여 만에 뒤바꾸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경찰 보직 인사는 발표 일자와 시행 일자 간에 일정 기간을 두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인사 명령은 저녁에 발표하고 바로 다음 날 자 기준 시행이다. 실제로 인사 대상자들은 저녁 무렵 인사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부임지로 출근을 준비하게 돼 이·취임식조차 갖지 못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전임자에게 이임식 없이 곧바로 나가란 얘기”라고 말했다.

특히 고위직 보직 인사를 2시간여 만에 뒤집은 것을 두고 윗선 개입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치안감 인사를 언론에 다시 공지하면서 “실무자의 실수로 최종안이 아닌 것을 잘못 배포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1시간여 뒤에는 “행안부가 최종안을 잘못 보내와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마저 번복했다.

두 차례의 인사 발표에서 보직이 변경된 일부 인사를 두고도 설왕설래다. 특히 경찰 골프장 예약 특혜 의혹을 받았던 이명교 중앙경찰학교장(전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은 첫 번째 인사 명단에 오르지 못했는데, 새로운 명단에는 추가되면서 갖가지 추측이 쏟아진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서는 첫 번째 발표가 당초 경찰의 추천이 반영된 인사인데, 수정된 두 번째 인사에서 정부 윗선의 입김으로 뒤집힌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경찰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장의 추천을 거쳐 행안부 장관이 제청권을 행사, 대통령이 재가한다. 이날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추천권을 행사했고, 여러 검토안들 중 대부분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사실상 여러 인사안을 두고 행안부가 결정했다는 취지로 읽힌다. 경찰 관계자는 인사가 바뀐 과정에 대해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한다”며 “행안부로부터 ‘언론 보도된 것이 최종안이 아니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 실무진의 실수로 빚어진 촌극이라 해도 정부가 경찰 고위직 인사를 발표하고 2시간이 지나서야 이를 정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첫 번째 인사 명단은 오후 6시15분쯤, 두 번째 명단은 오후 8시38분쯤 받았다”고 했다. 경찰 내부망에 수정된 인사를 공지한 것은 오후 9시20분쯤이 지나서다. 경찰청과 행안부, 대통령실 모두 오류를 인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은 물론, 대처도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치안감 인사가 발표된 시점도 의혹에 불을 지핀다. 행안부 자문위는 전날 오후 경찰에 대한 통제 방안을 담은 권고안을 발표했는데, 이상민 장관은 이날 미국 조지아 출장에서 오후 늦게 귀국하자마자 인사를 냈다. 최근 경찰 고위직 인사가 오전 10시쯤 이뤄진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도 “오후 4시쯤 인사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행안부에서 전달받았다”며 “급하게 발표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행정안전부 제공
정부는 화살을 경찰로 돌렸다. 이 장관은 이날 “대통령은 결재를 한 번밖에 하지 않았고, 기안 단계에 있는 것을 경찰청에서 (오후 7시쯤) 인사 공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청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 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먼저 공지해서 이 사달이 났다”며 “대통령은 (오후) 10시에 딱 한 번 결재하셨다”고 해명했다. 이 장관의 해명에 발맞춰 행안부도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이번 사안은 중간 검토 단계의 인사자료가 외부에 미리 공지돼 발생한 혼선”이라며 “인사권자의 결재 전에 경찰청 내부망과 기자실에 자료가 공지됐다”고 전했다.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도 “대통령실은 경찰 인사안을 수정하거나 변경한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인사안이 번복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인사 번복을 통해, 인사안을 통해, ‘경찰 길들이기’를 한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나머지 사실에 대해선 행안부 내지 경찰에서 설명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권구성·송은아·이창훈·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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